아름다운 여인이 빛을 등지고 어딘가를 보고 있다. 손을 이마 위로 올리고 무언가를 더 자세히 보려는 듯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저 멀리 항구에 긴 항해를 마친 연인이 도착하기라도 하는가? 하늘은 푸르고 바다는 더 푸르다. 푸른 바다와 흰 대리석 사이에 선명한 분홍빛 작은 꽃송이가 활력을 더해준다. 물결치는 드레스와 대리석 위로 드리운 꽃그늘 묘사마저 아주 섬세하다.
로렌스 알마 타데마(Lawrence Alma-Tadema1836~1912)의 ‘기대(Expectations)’라는 작품이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으나 벨기에 왕립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1870년 영국에 정착하여 평생을 살았다.
그의 작품은 이집트, 로마 등 고대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세심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대리석이나 화강암을 표현하는 기술은 당대 화가 중 최고였다고 한다.
아름답고 로맨틱한 그의 작품들은 그가 활동하는 동안 매우 인기를 얻었으나, 모더니즘이 대두한 이후 오히려 혹평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다시 재평가되어 그는 영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게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의 작품이 벤허(1926), 클레오파트라(1934) 등 초창기 할리우드 영화의 모델이 되었는 것이다. 작품 속 건축물이나 의상의 세심한 묘사는 고고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기다림, 참 설레고 가슴을 뛰게 하는 단어다.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사막여우가 그랬다. ‘만약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오후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만나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는데 어찌 1시간 전부터 행복해지겠는가. 그날 아침부터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그 전날 밤 설레서 쉽게 잠들지 못할 수도 있다.
바라던 선물이 곧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도, 새집으로 이사 가는 날이 다가올 때도, 주문한 맛있는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릴 때도 기분이 좋다.
그런가 하면 기다림은 참 지루한 일이기도 하다.
흔히 엘리베이터가 얼른 도착하기를 바라며 버튼 여러 개를 한 번에 눌러놓는다. 막 버스를 놓치고 다음 차를 기다려야 할 때도 한숨이 나온다. 약속 시간에 늦은 사람을 기다릴 때도 무척 지루하다.
또, 이어지지 않은 인연을 기다리는 일은 참 외롭다.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두 마음이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은 쓸쓸하다. 오랜 시간 열정을 쏟은 일이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는 일도 참 힘들다.
그러고 보면 기다림의 결과가 보장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 상태가 달라진다.
기다리면, 원하는 일이 확실히 일어나거나, 보상이 생길 때는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고 설렌다. 어른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릴 때처럼 반드시 이루어지는 일은 지루해도 참을 만하다.
그중,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일, 이루어질지 말지 불확실한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 가장 난도가 높은 듯하다.
스피드 스케이트 분야에서 최고에 오른 이상화 선수가 한 프로그램에서 질문을 받았다. 스케이트를 시작할 때로 돌아가서 선택할 수 있다면 스케이트를 또 하겠냐고. 그녀는 안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금메달을 받는다는 걸 알고 있다면 시작하겠냐고 다시 질문했다. 이번에는 그러면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자기만의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꿈을 품고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을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 또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엄청난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낌없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의 노력으로 실력을 다져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확고한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끝내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때, 그 실패의 쓴맛을 감수할 배포가 있어야 한다.
결국, 이런 기다림은 자기와 싸우는 일이다. 주위의 불안한 시선과 외로움을 견디고,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야 하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버텨내야 한다. 스스로 길을 내야 하고, 남들과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기꺼이 감수하고 집요하게 한 길을 가며 원하는 능력을 얻기를,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 그들을 열렬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