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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Dec 15. 2023

파도처럼

파도의 모습이 인생을 닮았다

 

Winslow Homer, Summer Squall, 1904



센 파도가 거침없이 밀려오고 있다. 마치 앞을 가로막는 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격렬한 파도의 우렁찬 포효가 들리는 듯하다.  

    


이 작품은 윈슬로 호머의 ‘여름 스콜(Summer Squall)’이다. 스콜은 갑자기 부는 바람을 뜻하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갑자기 불기 시작하여 몇 분 동안 계속된 후 갑자기 멈추는 바람. 지속 시간이 돌풍보다 길다’라고 되어 있다.


윈슬로 호머는 18~19세기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로 예술가는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것을 묘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 속 배경은 미국 메인주에 있는 프라우츠 넥(Prouts Neck)의 바다로 호머가 종종 낚시하던 곳이다. 그는 이곳의 풍경이 날씨에 따라 바뀌는 것을 관찰해 여러 작품으로 남겼고, 이 걸작이 그중 하나이다.      




몇 년 전, 어느 겨울, 나도 바로 이런 바다를 만났다.


친구들은 슬픈 일을 겪은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바다로 향했다.  그리고 조용하고 인적 드문 해변에 차를 세우고 바다 가까이 걸어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바람은 제법 매섭게 몰아쳤으나 나에게는 오히려 그런 날씨가 더 위로가 되었다.


끝도 없이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도를 한참 보고 서 있었다.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도, 결국에 모래 위에 스러져 흰 물거품으로 사라져도, 그래도 끊임없이 밀려왔다.


그러다 문득 저 파도가 내 모습, 또 사람들이 사는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또 오늘, 그리고 오늘……. 오늘의 무한 반복 속에 살아가는 내 모습 같았다.


삶은 맹렬히 세상에 부딪히며 오늘을 살고, 하루가 끝나면 잠들고, 눈을 뜨면 다시 시작되는 일상의 연속이다. 때로는 어김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기도 답답하기도 하지만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 무한 반복을 끊기는 힘들다.


그날, 지치지도 않고 밀려오던 파도가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때부터 파도치는 바다의 풍경이 다양한 의미로 다가왔다.


산더미처럼 높고, 야수처럼 거친 파도는 힘들고 어려운 시기도 힘차게 맞부딪치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모습처럼 보였다. 그런가 하면 빛나는 햇살 아래 조용한 바다는 평온한 일상의 행복을 비유하는 듯했다. 짙은 해무에 휩싸인 새벽,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을 무던히 걸어가는 사람들 같았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힘든 일이 잇따라 일어나기도 하고,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도 자연 일부이기에 같은 파도 같은 삶은 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덤덤한 마음으로 또다시 오늘 하루를 살고 있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밀려오는 파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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