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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Dec 18. 2023

우주선과 달 토끼

기술에도 온기가 깃들기를

       

Umberto Boccioni, The city rises, 1910

  

화면 중앙을 차지하는 붉은말의 기세가 대단하다. 사람들은 새 건물을 올리는 임무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새로운 문명을 건설에 동참한다는 생각에 활력이 절로 솟는 모양이다. 낡고 답답한 박물관 같던 도시가 혁신적인 기계와 기술을 이용해 새로 태어나다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이탈리아 미래주의 화가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 1882~1916)의 작품이다. 1909년 이탈리아의 시인이 필리포네 마리네티가 ‘미래주의 선언’을 발표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미래주의는 과거 유산을 버리고 기계, 과학 등 신문명을 지향하자는 전위적인 내용으로 문학을 넘어 미술, 음악, 건축 등 다양한 장르에 영향을 주었다.


보치오니는 미래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강렬한 색과 분열된 이미지를 통해 역동성과 속도감을 표현하는 회화와 조각 작품을 제작했다.


이 그림은 보치오니의 첫 번째 미래주의 작품으로 폭이 무려 3미터나 된다. 발전소를 건설하는 남성 노동자들의 모습 또는 봉기하고 있는 민중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밝은 원색을 사용하여 활기차고 열정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반복적인 터치를 연결하여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냈다.          




미래주의 작가들이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지금 이 세상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인류가 달에 내디딘 이후 지구 밖에는 인간이 쏘아 올린 많은 위성과 우주선이 떠 있다. 앞으로는 해외로 여행을 가는 대신, 달이나 화성에 휴가를 떠날지도 모를 일이다. 또 의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노화의 비밀을 하나하나 밝혀내고 있으니 앞으로 평균 수명이 100살도 넘을 것 같다. 또 변화가 어찌나 빠른지 요즘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시대에 뒤처진다는 느낌이 든다.     


살기도 참 편해졌다. 세탁기와 청소기가 있으니 나도 손으로 빨래하는 일이 거의 없고, 빗자루로 바닥을 쓰는 일도 별로 없다. 핸드폰과 어플을 이용하면 외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와 바로 연락할 수 있다. 이런 정도는 이제 생활의 일부나 다름없어 기술의 발전이라고 언급하기도 민망한 정도다.      


그렇다면 기술이 이처럼 고도로 발전한 지금의 우리가 반드시 옛날 사람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몰랐던 달의 면면을 알게 되어 신기하기도 하지만, 신화와 전설의 대상이었던 달이 신비로움을 잃은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또 아무리 목소리를 듣고 화면으로 얼굴을 봐도 실제 만나 온기를 느끼는 것에 비할 수 있을까. 너무 빠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외되고, 기술을 접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은 도태된다.      

반대로 과학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500년 전, 1000년 전 사람들은 어땠을까?


우리는 여전히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위대한 철학자로 보고 그들의 사상을 공부한다. 과거의 사람들은 현재의 과학 기술로도 이해할 수 없는 건축물이나 도시를 만들기도 했다. 요즘은 일기예보가 없으면 내일 날씨를 예측하지 못하고, 지도나 내비게이션이 없이는 길도 찾지 못한다. 옛날 사람들은 그런 기술 없이도 다 가능했던 일이다. 옛날 사람들이 지금보다 무지하고 불행했다고만 할 수 있을까.     


변화에 따라가기 급급해서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것은 기술만이 아니라는 것을 자꾸 잊는 것 같다.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고 과학으로 달을 분석해서 우리가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달에 토끼가 있다고 생각하고, 달을 보고 소원을 빈다고 해서 우매하고 시대착오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기술과 과학 역시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인간을 위해, 인간에게 이롭게 사용될 때 비로소 그 변화를 발전이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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