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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즐 Jan 09. 2024

시간을 타고 흐르는 나,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1931


꿈에서나 볼 법한 이상한 풍경이다. 삭막한 해변에 녹은 듯 흐물거리는 시계 여러 개와 엉뚱한 데 서 있는 말라버린 나무가 보인다.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은 시계에는 개미가 잔뜩 기어 다니고 있다. 또 가운데 있는 흰 물체는 정체가 뭔지 모르겠으나 참 기묘하게 생겼다. 화면 왼쪽을 차지한 각진 나무 상자나 나무판은 좀처럼 해안에 있을 수 없는 물건들이다. 저런 시계가 있다면 시간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나도 같이 녹아내리면 될까?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바로 그 유명한 작품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이다. 이 작품을 세상에 발표하며 달리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서구 세계는 오랫동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중시해 왔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일었다. 또 당시에는 프로이트의 꿈과 무의식에 대한 이론이 크게 주목받았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비이성적인 것에 주목하고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을 표현하는 초현실주의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작품의 배경은 달리의 고향 근처에 있는 스페인 까다께스 해안이다. 그리고 마른 올리브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늘어진 시계는 햇빛에 녹은 카망베르 치즈를 보고 이미지를 얻었다고 한다.          




이 그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시계다. 시간에 대한 심리적 속성을 참 기발하고 재미있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표현할 때 흔히 쏜살같이 지나간다, 시간이 유수와 같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하루는 참 길어도 일주일이 금방 갈 때가 있다.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불편한 상황에서는 시간이 참 더디 흐르기도 한다.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게 이럴 때 여실히 느껴진다.      


또 세상에 시간이 흘렀는데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는 크게 달라진 점을 발견하기가 어려워도 1년 전, 10년 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표시가 난다. 그렇다면 눈치채기는 어렵지만, 오늘의 나는 어제와 당연히 달라졌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리고 이 세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는 중이다.     

이렇게 시간이 계속 흘러가는 것이라면 물리적으로 현재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개념상 과거는 존재한다. 내가 지나온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미래이니까 미래라는 단어의 근거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현재는?     


보통 가까운 과거와 미래를 포함한 일정 기간을 현재라고 한다. 그런데 엄밀히, 딱 지금, 바로 이 찰나의 현재는 존재할까. 1초, 0.1초, 0.01초, 0.001초 전도 과거고, 1초, 0.1초, 0.01초, 0.001초 후도 미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손가락이 키보드에 닿는 찰나 과거가 되었다.


내가 생각하니까 존재한다던 철학자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그 순간, 그 생각은 과거의 생각이 되고, 아직 하지 않은 생각은 미래에 남아있다.

만약 현재가 과거와 미래 사이의 허상이라면, 그 허상의 시간 속에 있는 나 역시 허상이 아닐까?


그러나 현재는 개념이고, 나는 실존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존재가 개념에 우선하는 게 맞겠다. 그러니까 내가 존재하는 실체고, 시간이 허상이겠다.      


새해가 되고도 훌쩍 며칠이 지났다. 시간이 참 잘 지나간다 싶어 시간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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