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옷을 입고 멋진 모자를 쓴 젊은 남자가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앞을 보고 있다. 마치 자신의 성공과 야심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슬쩍 엿보이는 듯하다. 작품의 묘사마저 완벽하고 섬세하며 패기가 넘친다. 이제 그의 앞에는 탄탄대로만 펼쳐질 것 같다. 한편, 오른쪽의 남자는 남루한 차림새에 머리는 백발에 가까우며 생기를 느낄 수 없는 지친 표정으로 무심하게 앞을 내다보고 있다. 가만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 깊은 눈빛이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것 같다.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 1606~1669)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친 대단한 예술가이다. 역사, 성서, 초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그렸고,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왼쪽 그림은 30대의 자화상이다. 그 무렵, 화가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에 자기 스튜디오를 차리고 사스키아와 결혼한 다음이다.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고 행복한 가정도 이루었으니 참으로 살만한 인생이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옷과 장식이 100년 전 르네상스 스타일이라는 사실이다. 난간에 팔을 걸치고 있는 포즈 역시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이 잘 사용했던 방식이다. 그래서 렘브란트가 르네상스 거장들의 뒤를 잇는다는 자신감이 반영되었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오른쪽 그림은 63세 때로 죽기 얼마 전의 작품이다. 이 시기 렘브란트는 막대한 재산과 명성을 모두 잃고 초라한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때 그린 자화상은 삶의 희로애락, 성공과 몰락을 모두 겪은 후 인생 말년에 접어든 나이 들고 지친 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도 자화상을 그려본 적이 있다. 거울을 보며 내 모습을 살펴보기도 했고, 사진을 뒤적이며 소재를 골라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이 중 어떤 것이 진짜 내 모습인가 궁금해졌다.
보송보송한 피부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한 천진난만한 아이가 나일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미래가 막막하고 두렵지만, 뭐든 해보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젊은이가 나일까? 아니면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관찰하고 있는 거울 속에 비친 저 모습이 나일까?
사진 속에는 누가 놀렸는지 잔뜩 골이 난 나도 있었고,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우는 아이 때의 나도 있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행복하게 활짝 웃기도 하고, 긴장해서 로봇처럼 굳은 모습도 있었다.
그리고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자화상을 그려야 하나.
투명한 필름에 일정 시간 동안 매일 얼굴을 한 장씩 그려서 겹쳐놓아도 보고, 포토샵으로 여려 시기의 얼굴을 다 겹쳐놓고 평면에 표현해보기도 했다. 각 시기의 얼굴 사진을 조각조각 잘라 이어 붙인 모자이크도 만들어보았다. 그러고도 몇 가지 시도를 더 이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가 어느 날 문득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 전부가 나구나.
삶의 모든 순간을 거쳐 지금에 이른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그때의 내 모습을 천천히 그려 나갔다.
젊은 렘브란트의 모습에서는 젊은 그의 인생이 드러나 있다. 긴 세월이 녹아 있는 나이 든 렘브란트의 모습에서는 젊은 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심원하고 복잡한 깊이가 느껴진다.
에이브라함 링컨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 말의 깊이도 이해하게 되었다.
나 역시 현재의 모습이 인생 전체를 담고 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생각, 언행, 경험 등 모든 것의 총집합체이다. 과자 한 봉지에 울고 웃던 천진한 어린 시절도, 끝없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듯 외롭고 고민으로 가득하던 젊은 시절도 겹겹이 쌓여 있다.오늘의 자화상은 오늘까지 모든 인생을 담고 있고, 오늘의 생각과 마음가짐에도 지난 세월이 다 반영되어 있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10년 뒤에 마음에 드는 자화상을 남기고 싶다면, 지금 삶에 충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