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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동 현충원 독립운동 유공자 묘역에 있는 순국선열 “김 천성 선생” (1914-1945)의 묘비다. 선열께서는 중국을 주 무대로 광복군 제5지대 간부로 활동하면서 항일운동을 하셨던 분이다. 해방되고 이틀 후 일제의 총살형으로 순국하셨다고 비문에 새겨져 있다.
만약 중국이 아닌 한반도에서 수감 중인 상태였다면, 패망하여 철수에 급급한 일본이 선생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을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묘비 하단에서 "투사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라는 글귀를 볼 수 있다. 이 말의 깊은 의미를 알고 싶어 검색을 해 보았지만 단서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나름 해석을 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할 뿐, 개인적인 영예와 가족의 영달은 안중에 없다.’
안중근 의사의 위국헌신(爲國獻身) 군인본분(軍人本分)의 정신과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데 어떤 정신세계를 가져야 이 같은 생각을 가슴에 안고 살 수 있는지 궁금하다. 한없이 존경스럽다. 독립군을 평가절하하는 글을 보면 이런 내용을 볼 수 있다. <독립군은 말 타고 총 쏘는 만주땅의 하나의 세력 즉, 군벌에 불과하다> 이 말은 무언가 얻는 게 있어 일본군에 저항했다는 뜻이다.
이런 주장이 조금이라도 맞다면 선생의 말은 더욱 돋보이는 경우가 아닐까 한다. 지금도 권력을 추구하는 집단은 지분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얼마 후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천문제로 이전투구 중이다. 지분확보가 어려우면 괴나리봇짐을 바로 둘러멘다. 기업도 경영자도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적정지분 보유여부를 놓고 사투를 벌인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때 진심이다. 그래서 선생의 말이 예사롭지 않다.
3.1절을 앞두고 이런저런 자신들의 지분 강화만을 앞세운 글이나 보도가 이어질 것이다. 필자는 일본에 대한 생각이 이렇다. 그들은 비록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지만 ‘친밀이 아닌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이웃’이 아닌가 한다. 미국과 더불어 경제 안보 측면에서 중요한 이웃이긴 하나 동시에 언젠가는 배신을 할 것 같은, 믿음이 가지 않는 나라 다는 뜻이다.
내 머릿속엔 폭넓게 알아야 할 주요 지역 세계사는 뒷전으로 밀리고 오직 불구대천의 원수를 바라보는 시각으로서의 일본 밖에 없다. 개인적인 의견은 다음과 같다. ‘보상이고 배상이고 사과고 필요 없다. 자발적으로 이행하기 싫다는 상대에게 치근덕 대봐야 엎드려 절 받기다.’ 대신 그들을 능가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만이 수백 년에 걸쳐 쌓인 트라우마를 걷어 내는 길이라고 믿는다.
나의 관점에서 일본이 불편한 이유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내용을 대충만 적어도 넘친다.
고려 말, 조선 초 하면 왜구의 약탈이
이순신 장군 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집요함이
안중근 의사 하면 이토 히로부미의 조선에 대한 능멸이
한일합방하면 경술국치가
3.1 운동하면 기미독립선언, 유관순이
이상화 시인하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가
관동 대지진 하면 조선인에 대한 만행이
사할린 하면 강제징용과 주름진 어른의 얼굴들이
위안부하면 대성통곡하는 나의 어머니 세대들이
정치하면 친일파와 여전히 기득권을 누리는 특권층이
엔고 하면 일본인의 한국인 현지 처(妻)가
아베 하면 군국주의 부활 시도와 경제보복이
후쿠시마 하면 원전 오염수 방류가
잃어버린 30년, 노인 대국 하면 우리나라 차례가
국가대표 대항전 야구, 축구에서 지면 울화가
사죄하면 독일이, 모르쇠 하면 일본이 떠오른다.
지금도 수많은 현안이 대치중이다.
공항엔 일본을 가기 위한 여행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어쩌면 필자가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사람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