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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언제부터 찌질해졌는가

끓는 물속의 개구리가 여기 있다

by 현진형 Mar 04. 2025

찌질하다. 비루하고, 남루하고, 구차하다. 남부끄러운 짓을 많이 하고 부끄럽고 창피할만한 짓을 많이 한다. 써 놓고 보니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찌질했음은 인정한다.


아버지가 잘 나가던 시절엔 찌질함이 없었다. 뒷좌석에 느긋하게 앉아 타던 각그랜저가 뒷좌석도 없던 2인용 봉고로 바뀌었을 때 찌질해졌다. 초등학생을 지나 봉고로 운전면허를 따게 된 이후로도 찌질함은 이어졌다. 대학생 내내 돈이 없었고 1주일에 1만원이 아쉬워 지하철 10 정거장을 걸어서 가곤 했다. 밥 사주는 선배 한 번 해본 적 없이 늘 밥 얻어먹는 선배로 살았다. 4학년 때는 동아리방과 동아리 모임을 피해다니며 찌질하게 살았다. 그러다 대기업이란 곳에 들어와 꼬박꼬박 월급 받으며 딱히 사치하지 않고 사니 여유가 생겼다. (그러고 보니 찌질함 = 여유 없음이 아닐까) 회사에선 술 잘 사주는 선배가 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대학후배들에게도 밥을 사줄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찌질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혼이란 걸 하게 되고 경제권을 와이프에게 넘겼다. 자산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였고 나보다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권이 넘어가니 돈을 쓰는 게 눈치가 보였다. 많이 쓰며 사는 것도 아닌데 작은 사치 하나 부리려고 해도 눈치가 보였다. 마음대로 나가서 쇼핑하고, 원하는 걸 사던 시절이 사라졌다. 소심해졌다. 그렇다고 돈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 찌질한 건 아니었다고 하자. 5년 정도는 그렇게 눈치 보며 돈을 썼다. 그러다 어느 정도 애가 커가고 아이한테 들어가는 돈이 커지고, 미래 비용에 대한 생각이 커지면서 돈 쓰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회식에 점점 빠지게 되었고(이건 육아에 필요한 시간 확보의 이유도 있다.) 돈 쓰는 감을 점점 잃어갔다. 중고딩, 대딩 시절 극한으로 아끼며 살았던 그 찌질함이 다시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게 아마 한 5~6년 전이지 싶다. 돈을 못 쓰게 된 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전배, 사람, 육아 등등)겠지만 결론적으로 난 지금 돈을 잘 못 쓰는 사람이 되어있다. 돈을 잘 버는 사람은 돈도 잘 쓴다는데 난 아니다.


갑자기 이런 메타인지가 된 건 이전 글에도 썼지만 며칠 전 동료로부터 재테크 강의를 들으면서다. 저 침대 밑 구석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 청소기 주둥이에 붙어 쑥쑥 끌려 나오고 있다.


이런 찌질함 이제는 바꿔야 한다. 소심해졌고 여유가 없어졌다. 소심할 필요도 없고 여유가 없을 이유도 없다. 해야 할 것들을 하나둘씩 해보자. 하나하나에서 자신감을 얻다 보면 바뀔 거다. 아끼는 건 좋지만 찌질한 건 좋지 않다. 이제 숨 좀 쉬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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