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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은 없다

소모적인 원인 찾기에 매몰되지 말자

by 현진형 Mar 07. 2025

행동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의 최근작 '미스빌리프'를 보면 평범한 사람이 오신자가 되는 과정이 나온다. 오신자들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던 스트레스가 있었던 경우가 많다. 여기서 '예상하지 못했던'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그냥 발생한 일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하지만 인간의 뇌는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떻게든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처럼 딱히 인간을 해친다는 목적 같은 건 없이 자연발생한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특수한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리고 그 의심을 하나씩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오신자의 늪에 빠져든다.


예를 들어, 길을 지나가다 갑자기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혀서 넘어졌다고 치자. 그 남자는 사실 국정원에 고용된 남자이고 내가 그날 어느 동선으로 움직이는지 다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던 걸 보면 주변의 사람도 모두 고용된 연기자임에 틀림없다. 혹은 누군가 나에게 위험에 처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경고차원에서 어깨를 치고 지나간 걸 수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인간은 쉽게 이런 식으로 원인을 찾아나간다. 그리고 거기에 '인터넷에서' 발굴한 근거들이 덧붙여지면 인과관계는 마치 1+1=2처럼 확실해진다.


언제부터인가 집-회사-집-회사만 반복하면서 내가 이렇게 된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핑계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갑자기 빠진 살이, 건강검진의 결과가, 멀어진 직장과 힘든 출퇴근 동선이, 아직 어린아이가, 노화로 인해 떨어진 뇌와 신체능력이. 이 수많은 것들이 내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어줬다. 왜 그렇게 사냐는 자조적인 물음에 방패가 되어줬다. 그렇게 덕지덕지 쌓아 올린 겹겹의 방패들은 무겁게 나를 둘러싸고 이제 고철덩어리처럼 굳어버렸다. 나는 그 속에 갇혀버렸다.


원인이 있다는 건 좋다. 명쾌하니까. 논리학을 처음 배울 때 나오는 것처럼 세상이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명제로만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미스빌리프'에 나오는 것처럼 세상은 원인이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원인이 있어서 고통스러운 세상이 아니라 원인이 없어서 고통스러운 세상이다. 그렇다면 굳이 원인을 찾아 헤맬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결과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의 원인을 내가 만들어 나가면 된다. 정확하지도 않을 원인 찾기에 소모되지 말자. 결과를 보고 원인을 찾아 헤매기보다 원인을 수 없이 만들다 보면 언젠가 결과가 알아서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게 왜 그러냐면. 왜냐하면 말이지. 뭐 때문에 그런건지 내가 알아봤는데. 이유가 다 있는 건데. 그것만 안 하면 될 거야.


무엇보다 버려야 할 소리는 이거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


괜찮다. 이렇게 살아도. 굳이 왜 이렇게 사는지 원인을 찾을 필요도 없다. 내가 나니까 이렇게 사는거다. 밖에서 이유를 찾을 필요없다. 지금이 좋으면 더 좋게 만들고, 지금이 나쁘면 좋게 만들자. 그게 해야 할 일이다. 그것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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