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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모기 Apr 30. 2024

배움, 4월의 나날처럼 아름답게 변신하고 싶다는 꿈

수어 공부 한 달

수어를 만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수어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있는데 결석 없이 부지런히 배우러 다닌다. 지난 한 달 동안 색색의 꽃이 피어났고 새 잎들이 세상을 채웠다.

무채색 자연이 알록달록 풍성한 빛깔로 변해 가는 동안 내 수어 실력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생각한다. 나의 수어 수준이 갈색 나뭇가지에 움이 트던 3월 말의 풍경쯤 되려나. 아니 아직은 움틀 준비를 하며 내부에서만 생명이 꿈틀대는 3월 중순의 나무쯤 될 듯하다. 언젠가 나의 수어도 연두의 새 순이 돋고 초록의 잎으로 자라날 날이 오겠지. 4월 말의 풍경처럼 짙은 빛깔로 반짝 빛나기를 꿈꾼다.


함께 시작한 공부 친구들이 열댓 명쯤 되었는데 이제 고정 멤버는 예닐곱 명으로 줄었다. 의무가 아닌 공부를 지속하는 데는 내적 열정이 강력해야 하며 외적 방해 요소가 없어야 한다. 갑자기 생긴 급한 일정을 이유로 동기들이 하나둘씩 수업에서 사라졌다.


그동안 간단한 인사말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단어들을 배웠다. 그리고 지문자를 배웠다. 지문자는 고유명사를 말할 때나 수어표현을 모를 때 자음과 모음을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봄'이라는 글자를 표현하기 위해 'ㅂ'을 나타내는 손가락 모양 하나, 'ㅗ'를 나타내는 손가락 모양 하나, 'ㅁ'을 나타내는 손가락 모양 하나로 표시하는 거다.

선생님이 애국가 가사로 지문자를 연습하라고 하셔서 매일 길을 걸으며 지문자로 애국가를 부른다. 운전할 때는 눈에 보이는 간판 글씨들을 지문자로 표현해 본다. 막 한글을 익힌 아이들이 간판을 읽으며 공부하듯 나도 간판으로 지문자를 공부한다.


문장을 배우며 수어에는 조사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 너 좋아'라고 말하려면 그 세 개의 수어 단어를 손으로 표시한다. 조사가 없다는 사실 앞에서 내 마음에 작은 안타까움이 일었다.

- 내가 너는 좋아해

- 나는 너를 좋아해

- 나만 너를 좋아해

- 나는 너만 좋아해

- 내가 너만 좋아해

이런 문장들은 조사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은, 는, 만' 같은 보조사들이 문장에서 큰 역할을 하며 미묘하게 말의 의미를 바꾼다. 수어에는 조사가 따로 없으니 섬세하게 자신의 감정 결을 표시하는데 한계가 있겠구나 싶다.


지난 시간에는 비수지수어를 배웠다. 수어는 주로 손의 형태와 방향, 위치, 동작 등을 통해 말한다. 손가락이 조음기관인 셈이다. 이것을 손가락수어라는 뜻으로 수지(手指) 수어라고 한다. 수지수어가 아닌 것을 비수지수어라 한다. 얼굴 표정만으로 말하는 것이다. 비수지 신호라고도 부르는 듯하다.

'모르다'라는 의미로 양쪽 볼을 교대로 부풀리거나, '싫다'를 말하기 위해 얼굴을 찡그리며 턱을 좌우로 움직이는 식이다. 선생님의 자연스러운 턱 움직임에 비해 수강생들의 턱 흔들기는 느려터지고 어색하다. 서로의 주춤거리는 턱을 보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손으로 말하는 것도, 표정이나 몸으로 말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어로 말하는 것은 아마도 어설픈 영어 실력으로 해외에 나가 외국인과 대화할 때의 답답함 같은,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할 수 있는 말은 제한적인 그런 불편함이 있을 듯하다.

TV 뉴스 화면의 수어통역사를 보면서 늘 궁금했다. 저토록 빠르게 저토록 어려운 단어로 말하는 기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동시에 통역해 내는 것인지. 수어를 한 달 배운 내 생각으로는 음성 언어를 100% 수어로 통역할 수는 없을 듯하다.


수어통역도 그렇고 수어로 대화하는 것도 그렇고, 수어 단어가 적어 섬세하게 마음을 표현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이 눈 밝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온 마음을 다해 들어내려고 하는 노력. 표정과 손짓과 몸짓 그 모든 것에서 풍겨 나오는 비언어적 표현을 읽어내는 능력 말이다.


그리고 수어에서는 눈치도 아주 중요한 언어 능력인 것 같다. 수업 시작 전에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것저것 말해주신다. 수어 능력이 떨어지는 나는 선생님의 많은 이야기를 놓치고 만다. 그래도 몇몇 단어를 기둥 삼아 눈치껏 이야기의 맥락을 파악하려 노력한다. 조금 더 수어 능력이 뛰어나고 눈치가 빠른 동료 수강생들이 이야기의 흐름을 음성 언어로 말해 주어 늘 도움을 받곤 한다.


아직 수어 공부의 유치원생인 나.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수어의 세계에 대해 선생님께 질문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데 아는 수어 단어가 적으니 물을 수가 없다. 아직은 마음속에 수많은 물음표만 가득 담고 있다. 어려움 없이 내 생각을 수어로 말하고 마음을 다해 상대의 말을 읽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찌 되었든, 무엇이든 '배운다'는 것은 4월의 하루하루 같은 눈부신 변화를 꿈꾸며 걸어 나가는 의미. 제 자리에 무채색으로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의지. 오늘도 나는 나이 많은 학생이 되어 책가방 메고 배우러 간다. 언젠가 짙은 초록의 무성한 잎사귀를 매달게 될 날을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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