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 감독의 다큐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를 두 번 보았다. 영화 중간중간 감독의 내레이션을 초록 잔디밭 배경의 수어로 표현하는 부분이 좋았다. 길쭉한 손가락이 초록 바탕 위에서 춤추듯 말을 한다. 아름다웠다. 음성으로 말하는 예쁜 입술에 넋을 잃을 때가 있듯, 나는 영화 속 수어로 말하는 손가락에 반했다. 나도 그렇게 아름답게 말하고 싶어 수어교실에 등록했다.
나는 이길보라 님의 책을 통해 '코다'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수어에 대한 관심의 뿌리도 그 책에서 기인했다. 03화 공감, 말하기는 쉽고 실천은 아득하지만… (brunch.co.kr) 그러므로 이길보라 님이 만든 이 영화를 찾아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반짝이는 박수소리>는 감독이 이 십 대 중반에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2015년에 세상에 나왔으니 벌써 10여 년이 지난 작품이다. 농인 부모의 이야기,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감독 자신과 남동생의 이야기를 영화 가득 넘치게 담았다.
카메라를 든 딸이 부모님의 사랑과 결혼, 육아 그리고 일상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 세상 모든 가족이 나름의 고유한 서사를 지니고 있듯 말이다. 남동생의 인터뷰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그는 미소 띤 채 말하지만, 그의 문장에는 청인이 다수인 세상에서 농인 부모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겪었을 힘듦이 묻어났다. 부모님이 지닌 '다름' 때문에 자녀들에게는 사회적 압박이 더해진다. 잘하면 두 배로 칭찬받고, 잘못하면 '부모님 몸이 불편하신데 네가 이렇게 행동하면 되겠느냐.'는 식의 질타가 이어지는 시간들. 자신의 모든 행동에 필터 하나가 덮인 채 해석되는 그 부담감은 얼마나 거북하고 무거웠을까.
영화 속 부모님은 아주 밝은 분들이셨다. 그분들이 수어로 말할 때의 풍부한 표정과 웃음이 보기 좋아서 영화 내내 나의 입가엔 미소가 얹혔다. 특히 어머니의 밝고 환하고 커다란 표정에는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마법이 숨어 있었다. 그런 긍정적인 집안 분위기 덕분에 감독과 동생은 덜 휘청거리며 본인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한 번 해 봐. 경험해 봐. 넌 잘할 거야.'라는 부모님의 허용과 지지가 삶에서 가장 큰 힘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바람직한 부모의 자세라 생각했다.
영화의 백미는 노래방 장면이다. 농인인 어머니가 번쩍거리는 노래방 조명 아래에서 마이크를 들고 노래한다. 김수희의 '애모'라는 노래를 부른다. 노래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긴 시간이 카메라에 담긴다. 처음에는 엄마가 내는 노랫소리가 낯설어 놀라지만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여'라며 노래를 끝맺을 즈음에는 오묘한 감정이 차오른다.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아내 곁에서 남편은 탬버린을 흔들며 박자를 맞추거나 노래 가사를 수어로 따라 하며 순간을 공유한다. 농인 부부가 부르는 노래, 그 노래를 카메라 너머로 바라보는 딸의 시선, 그 모든 장면을 보는 관객의 시선은 복잡하게 얽힌다. 그리고 뭉클해진다.
영화 중간에 감독은 엄마에게 묻는다. "내가 왜 엄마 아빠를 찍는 것 같아?" 엄마는 답한다. "내 딸이 엄마 아빠의 청각 장애인 문화를 보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장애인이라서 정신이 뒤떨어지고 불쌍하게 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청각 장애인이지만 잘 사는 걸 보여줬을 때 들리지 않는 게 불쌍한 게 아니고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만드는 것 같아."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감독은 이렇게 엄마의 입을 아니 손을 빌려 말한다.
내가 감독에게 가장 고마운 것은 이것이다. 자신의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어 세상에 메시지를 내보내는 마음. 내밀한 가정사를 온 천하에 공개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 포스터에도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부터 가족의 역사가 담긴 사진이 빼곡하다. 이 모든 것을 공개하겠다는 생각을 앞에 두고 감독은 주춤했을지 모른다.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몹시 서성거렸을 것이다. 고민의 끝에서 용기를 결심한 이유, 감독은 반드시 하고 싶은 혹은 해야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일 터이다.
결국, 작가의 의도는 흩어지는 분수의 물 알갱이들처럼 넓게 멀리 날아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려지고 흘러들어 갔다. 최소한 한 명의 관객인 내게는 그랬다. 나는 50여 년을 살아 오면서 농인의 세상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래서 책이라는, 다큐영화라는 돌을 던져 나의 무지를 일깨워준 이길보라 님이 고맙다. 그녀가 보내준 메시지 편지들을 하나하나 꺼내 읽으며 나는 또 다른 세상을 야금야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이 알아나가고 싶다는 욕심을 품게 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사는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는 소중하다. 농인의 삶이 더 나아가 몸이 불편한 분들의 삶이 나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아니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슬픔과 고통이 유독 많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말의 세계가 침묵의 세계보다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갖게 한다. 더 많은 이들이 이런 영화를 통해 농인의 세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듯 수어 공부를 시작하는 이도 생길 것이다.
감독과 감독의 가족을 향해 나의 양손을 머리 위로 펼쳐 흔들고 싶다. 반짝반짝 작은 별 동요를 부를 때의 율동 같은 그 손동작 말이다. 그것이 수어로 박수를 의미한다.
반짝이는 한 가족의 이야기는 세상을 향해 말한다. 그대들 농인의 세계를 아시나요? 그런 특별한 시선으로 우리 가족을 바라볼 것 없습니다. 5월의 정원을 한 번 둘러보세요. 얼마나 다양한 색채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지.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잖아요. 삶의 형태와 소통의 방식은 우주의 별들만큼 많죠. 소리의 세계에 익숙한 당신에게 침묵의 세계를 보여드릴게요. 실컷 보고 가셔요. 이것은 우리 가족 이야기 한 편에 불과하지만, 다 읽고 나면 가지에 새로 돋아난 5월 나뭇잎 같은 신선한 초록 생각들이 당신 마음 안에서 하늘하늘 팔랑거리게 될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