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장소에 도착한 참이었다. 겨울 속 찬 바람이 불러일으키는 쓸쓸한 외로움을 상기시키고자 마치 연인의 손을 잡듯 휴대전화를 움켜쥐며 통화를 걸었다.
"붕어빵 먹을래..? 어.. 나 한 30분은 늦을 듯.."
안부를 묻는다는 등 절차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에 중요치 않다는 듯 건네 들은 첫 마디었다.
그저 단순히 겨울철 국민 간식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던 걸까.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뒷 말에서 의도를 파악했다. 단순 명료하게 말하자면 죄책감을 덜어낼 '뇌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넌지시 건네는 물질적 가치보다 방대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 목적을 이뤄줄 수 있는 특정 직위의 인물에게서 환심을 사고자 벌어지는 부정행위를 말하지만 친구의 붕어빵이 이에 해당하다고 보긴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보통은 묵묵히 기다렸다 건네받은 붕어빵의 온기가 서린 마음을 녹여줄 겨울철 핫팩이 되어줄 테니까 말이다.
막연히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서점에 들어섰다.
거대한 책장이 날 에워싸고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수많은 책 속에 담겨있을 잠재적 가치는 상상만 해도 내 몸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마치 강연장에 모인 인파들에게 내 가치를 소개하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손에 쥔 것만 같았다.
나의 주된 서적인 에세이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님들의 글을 보고 즐기며 내 것으로 만들 생각에 입꼬리가 자꾸 실룩거려 멈출 수가 없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자아가 여흥을 끝내고 싶지 않다며 모습을 드러낸 거 같았다.
책이 풍겨오는 냄새를 하나씩 살펴보며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이목을 끌기 충분한 생소한 관점이 돋보였다.
"언어에 온도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책을 완독하고 작성하는 지금의 나도 이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무언가에 홀린 듯 이 책을 선정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멍하니 '책 표지'만을 바라보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더 탐구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이 책 속엔 정말 많은 교훈과 삶의 결과물, 작가의 견해가 녹아들어 있다. 누구나 흔히 겪은. 혹은 겪게 될 상황을 풀어나가는 장면이 생동감 있게 드러나 독자로 하여금 몰입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동안 '인생의 정보'라는 수분을 갈망하며 쪼그라들었던 뇌가 팽창하다 못해 터져 나와 하나의 폭포를 이룰 것만 같았다. 한 번 읽는 것 만으로 채울 수 없는 수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당신이 인간이라면 한 번 읽는 것으로 이 책을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언어의 온도』 - '대체할 수 없는 존재' 중에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가 있다.
상반된 성격의 두 인물이 이런 대사를 주고받는다.
유다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해요."
료타: 그건 그렇지만 회사에서 제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많습니다.
유다이: "아버지라는 일도 다른 사람은 못 하는 거죠."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성을 가지고 오늘도 어김없이 출퇴근 길을 나선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부양할 가족이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처음엔 '사랑하는 이'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위한다는 것은 하나의 명분이 되었고, 정작 '사랑하는 이'가 갈망하는 마음의 허기를 주관대로 채워 넣기 시작하며 뒤틀린 목적성을 띠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혹여나 이에 해당된다면 주변에 귀 기울이고 초심을 되찾는 것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