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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Oct 02. 2024

81. 나는 왜 다투는가, 하면

- ‘아픈 것 때문에 더 아픈 세상’인 것이 아파서?


글을 막 쓰려고 하는 차에  

아픈 사람들의 연대’를 말하는 사회단체 ‘다른몸들’ 조한진희 대표의 인터뷰가 눈에 쏙 들어왔다.  

 하나는 오늘의 '의료 공백'에 대해서,

하나는 예전의 '아픈 몸으로 살아가려면...'에 관한 글이다.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625#:~:text=%EC%A1%B0%ED%95%9C%EC%A7%84%ED%9D%AC%20%EB%8B%A4%EB%A5%B8%EB%AA%B8%EB%93%A4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2040800031#:~:text=%EA%B8%80%EC%9D%80%20%3C%EC%95%84%ED%8C%8C%EB%8F%84%20%EB%AF%B8%EC%95%88


늘 그저 그런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삶을

오래 유지하다 보니

어떤 분야에서 선진('후진'의 반대말이다, 적어도 내가 쓰는 말이다) 분들을 보면

눈이 확 떠진다. 이상하게도 만나고 싶은 분들이

내 세계의 바깥에만 있다.

내 '방황'이 그래서 길어지나 보다.






아프면 너만 손해야     



“아프면 너만 손해”라는 말이 무서운 이유는

‘아픈 건 너 혼자야, 아파도 너 혼자야.’라는 의미의 말이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랬다.

'긴병에 효자 없고, 부모 효자는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내가 부모 되기도 전에,

내 자식이 장성하기 훨씬 전에라도

그냥, 단순하게, 아프면 혼자가 된다.

강인하던 사람이 허물어진다.

    

나는 직장내 괴롭힘과 따돌림을 겪으면서

몸이 아파서 출근하지 못했고 출근하려고 일어서면

주저앉았던 경험자다.

그 때 쉬쉬하면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직장내 ‘측근’이 내게 한 말이

“아프면 너만 손해다.”라는 것이었다.


정말 나는 손해를 많이 입었다.

일하지 못해서, 휴직에 이르러서,

휴직 후 다시 정상 근무를 채우지 못해서

급여 손실이 발생했고

‘아픈 애’로 낙인 찍혀서 복귀 후에도 지금까지

정상 코스와 거리가 먼, 비인기 업무를 순환하고 있다.

"모든 일은 중요하다./차이가 있다."에 얽히는 논쟁을 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각자의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도 아니다.

내 마음 밑바닥에서 새로운 출발을 했지만

가감 없이 말해서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허드레 일이고

이전에 하던 업무에 비하여 중요도가 낮은 일인 것은 사실이다.


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발병 당시부터 병원 문턱을 넘는 순간 발생하기

시작한 비용은

각종 실비 보험 등으로 커버되지 않고

고스란히 내 앞으로 청구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발병 이전에 비해 더 가난해졌다.

.

내 증상을 눌러서

어떻든 경제적 손실과 경력의 손상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막고자 한

건강에 대한 모든 나의 노력에는 또한

경제적 지출이 잇따랐다.

하지만 그 어떤 치료와 회복에 드는 노력과 비용에는 개인의 책임만이 요구되었다.

그렇게 나는 아픈 기간 동안 사람을 잃었고

돈을 잃었다.     


그런데 ‘현장 공무원의 보호와 지원’을 국정 과제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인사혁신처

나의 공무상 요양 신청을 ‘관성적으로’ 일단

불승인 처리하느라 석 달을 보냈다.


'공무상 재해의 인정 범위'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인 발병'을 포함

(아래 링크)시켜 놓고 갑자기 공무와 내 재해 사이의 상당 인과 관계는 인정하지 않겠다(또는 나에게 "입증하려면 해 보라.")는 식의 '공무상 재해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알 수 없는 기준을 가진 공적 기관의

‘아픈 사람은 본인 책임’이라는 이해 수준이

그대로 드러났다.


https://www.mpm.go.kr/mpm/info/compens/compens01/compens0103/


재해 공무원의 재해 수준에 대한 신속하지도 못하고 좌고우면하기만 하는 행정은

차라리 예상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릇이 담을 수 있는 양은
그릇의 크기를 넘을 수 없다    

 


내가 '그릇'과 같은 이야기를 과감히 글에 담는 이유는

짚이는 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현장 공무원은 직장에서나, 밖에서나, 모두 그 그릇이 참 아쉬웠다.

어떤 물체도 그것을 담을 그릇의 크기를

넘을 수는 없다.

여기서의 그릇이 ‘The bowl is big.’이라고 할 때의

그 그릇이 아니라는 점은 쉽게 짐작이 되실 것이다.


뼛 속까지 늘공이었고 직장 진입 이전에도

늘공이 되기 위한 자기 그릇에 대해, 그 모양과 크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

어쩌다 공무원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어공’이라고 하지만 어공들과의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이나 저들이나 비슷하게

자기가 정답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 쪽은 시험을 잘 봤기 때문에,

다른 한 쪽은 자신들이 진입할 수 있었다는 결과로

인해서 모두가 스스로를 모종의 능력자인 듯 과신했다.

둘 다가 줄을 잘 섰다, 혹은 줄을 잘 잡았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했다.

모두가 변화에 취약했고 그들끼리 손 잡은 순간에

하나가 되었으며 하나 같이

삶을, 사회를 보는 관점이 답,답,했다.


한마디로 어느 구역마다 써 붙여 놓은 해당 기관의

비전(존재 이유?)을 단 한 번 체크하지 않아도

그들은 임기를 무사히 채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방어를 잘 하기 위해 손 잡았다.

변화의 요구에 대해, 변화의 방향에 대해 눈감고

자기들끼리 뭉치는 데 매우 빨랐다.

그게 그들이 할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였고

그들은 그런 것 밖에 안중에 없었다.


그리곤 어느 날 퇴직해서 세상에 나아갔을 때,

그들은 몇 기 신도시 신규 분양 상가를 비싸게 받아

퇴직금을 날렸다는 일화의 주인공이 되곤 했다.

허세와 잘난 척만 강했지, 현실 공부가 안 된

실패 사례로 오르내리기 일쑤였다.

어쩌면 그럴까, 딱했다.

                   



방어적이다가 공격적으로      


공무원의 책임 중에 나는 ‘알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책과 사업에 대해 끝까지,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사회 밑바닥까지 알려야 한다고 말이다.

공무원이 집행하는 일은 자신의 개인 사업이 아니다. 세금을 쓴다.

그러므로 세금을 낸,

그것도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낸다.’라는

주의에 철저해

소득이 투명한 사람들은 봉급생활자건, 자영업이건, 사업자건 그저 ‘잡힌 고기’가 되는 나라,

영낙없이 세금부터 내고 보는 나라에서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더욱 행정이 투명하고 친절하게 다가가야 하며,

끝까지 ‘안내’하고 철저하게 ‘홍보’해서 면밀하게

그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작년에 한 것을 올해 또 하고,

작년에 일한 담당자가 온데간데 없이 파일만 덜렁

남겨두고 혹은 그마저도 치워 버린 자리에

생판 다른 일을 했던 새로운 담당자가 와서 주섬주섬 챙겨서 하는 사업이

작년 사업의 피드백이나마 제대로 된 것일 리가 없다.

그냥 주먹구구를 하다가 세월만 보내다가

또 옮겨가면 된다.

오죽하면 민원이 예상되거나

이해관계가 첨예한 파트에서는

“나 떠나면 문제 삼으라.”는 말이 버젓이 돈다.


그렇게 방어에 치중하다가

누군가, 무언가 '목표물'이 나타나면 그들이야말로 가장 잘 공격적이 된다.


법령과 실무를 갖춘 그들이 무서울 것은 없다.

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할 것이고,

목표물이 다치거나 아파서 병원에 드러누워도 절대 문병 가지 않는다.


사실과 달리 목표물은 제 나름대로 아픈 것으로 

고정된다.    

내가 겪었으며 지금도 이 고인 물 안에서

썩어 가고 있을

어느 어느 직장 내, 기관 내, 사무실 내의 고립일지라도,

고립과 배제는 그렇게 그렇게 흘러 흘러

막강한 리그전을 펼친 그들에 의해 완성된다.  

        




나는 왜 다투는가     



옆지기도 자세히 모르는 이야기다.

나는 왜 다투는지를.

옆에서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대신할 리는

만무하다. 둘이 같은 곳을 보다가, 또 다른 곳을 바라보기도 한다. 나는 그것이 ‘자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생각지 않은 행동을 하더라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면에서

옆지기란 '해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는 게

내 개똥'사랑론'이다. 아뭏든,,,


나는 내 행동을 선택할 때 그것이 미치는 영향까지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끄러우면 시끄러운 대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 것이고

조용하면 조용한 걸음이 정당한 무게를 실을 때라야 기억에 남을 수 있다.

    

'아픈 사람은 정말 나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면

인사혁신처가 무 자르듯 나의 신청을 잘라 버렸을 때 가던 길을 계속 갔을 것이다.

누구나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려고 하면 내적 저항의 소리를 마음속에서 듣는다.

“꼭 그래야 돼?” 하는 소리.  

   

아픈 사람들, 그것도 직장에서, 그것도

뭉쳐져서 바윗돌처럼 단단하게 된

'다수'라는 이름의 집단에 의해 따돌림당하여

오로지 일만 보고 직무에 몰입했던 사람들이

피 흘리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흩어져서 각자의 아픈 상처를,

피가 흐르는 상태에서 홀로 돌본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그에 들어간 시간이 아깝고 들어간 비용을 어디에서도 보전할 길이 없다.

아무도 안정적으로, 우리 같은 피해자들이

아프고 힘들고 회복이 더디지만,

아프지 않고 더 이상 힘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 알아서 기울인 갸륵하고 절절한 노력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월급을 삭감했고 ‘아픈 애’라고 열외시켰으며 내 뒤에서 자꾸 귓속말로 숙덕거렸다.

규정은 규정”이라면서 

“아프면 관두든가, 쉬면 되는 거 아냐?”라는 말로 따돌림을 완성시켰다.   

   

아픈 사람들이 서로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

자신들의 싸움을 알리고 사기를 불어넣는 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저런 사유에서 다투어 보려고 한다.


다투는 것은 승부만으로 규정지어지지 않는다.

많은 따돌림과 괴롭힘 가해자들이

한 두 명의, 자기들만의 리그에 방해되는 피해자를

고립시키거나 타 근무처로 전출시켜서

그들 눈에만 안 보이게끔 효과적으로 치웠기 때문에 그들 시선에선 승부가 끝났다고 여길 테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다투고 있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페이퍼로만 ‘사람’을 다루고,

일을 글로만 배운 사람들이 높이 올라가서,

아픈 사람들을 두고 허약한 사람들이라 지칭하는 데에 기가 눌린다. 한 번 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다.


결국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 또는 자기 성찰을 유독

잘하는 사람들

절차적으로 번거롭게 되고 또다시 비용을

토해 내야 하는 어떤 일을

염두하지 못할 것을 기대하고 내린

모든 결정은 가짜에 불과하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해야겠다.


불과 일 주일도 안 되는 간격으로

날씨가 급변했다.

뜨거워서 피할 그늘만 찾던 태양이

이제는 따사롭게 느껴진다.

언젠가 나에게 '사람'이 다시 따뜻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겠지.

지금 이 브런치에서 느끼듯이 말이다.


내가 가야 할 길. 날씨가 화창하길 바라며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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