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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라 Jan 08. 2024

진달래 대피소 12:00부터 탐방 제한

무지함의 한라산등반기

  한라산에 올라가고 싶었다.

  왜였을까.


  드라마를 보며 느꼈던 감정인 것 같다. 어려움을 극복해 내며 새로운 마음가짐과 시작을 자연을 통해 얻어가고 싶었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비를 맞으며 한라산에 올라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자연이 주는 끌림이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올라가 보겠다는 마음으로 가슴에 새겨두었다.


  혼자 갈 용기가 없어 친구 하니에게 모든 장비를 준비할 테니 같이 가자고 했다.


  그해에 눈이 많이 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뉴스에서 사건 사고들이 많았고 눈 때문에 고립되는 상황들이 있어 하니는 고민했다. 부모님의 허락도 받아야 했고 워낙 눈이 많이 왔었기에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잠정적으로 날씨를 지켜보며 고민하다 가기로 결정했다. 어찌나 기쁘던지 갈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계획이라 함은 비행기티켓을 끊고 숙소, 렌터카 예약, 눈 쌓인 산을 올라갈 장비를 챙기는 것이었다. 내게 있는 장비는 엄마의 등산화뿐이었다. 엄마의 등산화 사이즈가 하니발에 맞을 것 같았다. 한라산을 간다고 직장 동료에게 이야기하니 친절하게 등산화,  스패치, 스틱, 아이젠, 의자를 두 개씩 빌려주었다. 시작이 참 좋다. 기쁘다.


  제주도 출발.


  가방에 장비를 한가득 싣고 김포공항으로 출발했다. 인천공항철도를 타고 가던 중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하니의 전화였다. 통화하며 알게 된 사실이 최악이었다. 비행기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김포공항에 도착할 때쯤 비행기는 떠날 것이다. 이런 날벼락.


하니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상황을 이해해 준 하니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빈지리가 생기면 대기하였다가 타고 가는 것으로 하고 하니가 먼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떠났다.


  비행을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 꽃으로 한 시간을 채웠어야 했는데 나의 실수로 그러지 못했다. 다행인 건 바로 그다음 비행기에 좌석이 있어 뒤쫓아갈 수 있었다.


  제주도 도착.

  하니의  배려와 친절과 이해심으로 나의 실수는 묻힌 채 제주도여행의 기쁨이 시작되었다.


  렌터카를 타고 초보운전자가 기어가기 운전을 시작했다. 잔뜩 긴장했지만 복잡한 공항 쪽을 벗어나니 몇몇의 차만 보일뿐 펼쳐진 도로가 뻥 뚫린 채 긴장감이 회수되었다.


  파란빛의 바다에 감탄하고 지나가다 유채꽃에 유혹되어 그곳에 뛰어들어가 예쁜척하며 사진 찍기 바빴다. 여행이 이래서 좋다는 걸까.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좋다. 즐겁다. 행복하다. 하니에게 감탄사를 만발하며 좋은 감정을 마구 퍼부었다.


  우리의 목표 한라산을 등반하기 위해 간단한 여행 후 숙소로 이동해 숙면 준비를 마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젊음을 믿었다. 한라산 등반을 위해 체력 기르기를 하지 않았다. 앞산이라도 다니며 꾸준히 체력을 다지던지 준비과정이 있었어야 했다. 그냥 장비만 챙기면 된다 생각했다. 그렇게 젊음의 자신감으로 다음날 아침 성판악탐방로를 향해 갔다.


  등반 준비를 끝낸 후 입구로 걸어가 안내글을 읽었다.


“진달래 대피소 12:00부터 탐방 제한.

진달래밭까지 3시간”


  정보도 없이 그냥 달려들었다. 제한시간, 통제는 생각도 못했다. 언제든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차 싶었다.


  도착해 꾸물거리며 준비하는 시간이 아주 길었고 안내판을 발견했을 때가 9시가 넘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진달래 대피소까지 12시 전에 도착하려면 두 시간 삼십 분 만에 진달래대피소까지 올라가야 했다.


  3시간 코스를 더 빠르게 올라가기엔 체력이 안 따라줬다. 하니와 나는 속도에서 차이가 났고 나라도 먼저 올라가 제한시간 안에 도착하여 붙잡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악으로 깡으로 올라갔다. 어찌나 힘들던지 미치광이처럼 기압 소리도 지르고 혼잣말로 응원을 하며 막무가내로 땅과 앞과 시계만 보며 올라갔다. 진달래 대피소 도착. 슬프게도 12시는 넘었다. 5~10분 정도 지났던 것 같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분에게 열심히 부탁하고 있는 경상도 아저씨가 계셨다. 한라산 등반을 위해 제주도에 왔는데 못 올라가게 하면 우찌 합니까라며 조르고 화내고 씩씩대고 있었다. 같은 마음인 우리는 뒤에서 조용히 판단만을 기다리며 서있었다. 결국 허용되지 않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진달래 대피소로 라면을 먹기 위해 움직였다.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밖을 보는 순간 그 경상도 아저씨가 백록담 쪽으로 후다닥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니와 나는 벌떡 일어나 가방을 들고뛰었다. 다행히 우리도 함께 통과되었다.


  굉장히 기뻤지만 우리에겐 체력이 필요했다. 백록담까지 한 시간 삼십 분 코스였고 진달래대피소에서 출발이 늦었으니 더 빠르게 올라가야 했다. 그래야 정상까지 갈 수 있고 하산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었다. 등산 코스는 더욱 가팔랐고 다리가 어찌나 무겁던지 마음은 빨리 가고 싶으나 천근만근이었다. 그래도 꿋꿋이 쉬지 않고 올라간 덕에 백록담을 봤다. 백록담의 날씨가 13시 30분을 넘어서니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바람이 세게 불었고 하산하라는 목소리가 우렁차게 계속적으로 울렸다. 사진 찍는 사이 사람들은 하나둘 없어지고 날씨는 변화되고 있고 여유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다급하게 눈도장을 찍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산은 하니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집중해야 했다.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대화할 에너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 내려갔다.


  제주도에 간 이유가 한라산 등반이었다. 가야만 했고 이뤄야 했었기에 풍경은 보지 못하고 하얀 눈을 밟으며 앞만 보며 올라갔다. 힘들었지만 해냈다. 무사히 내려왔다. 그것이 기억에 남는다.


  너무도 무식했고 가기만 하면 다 될 것 같은 생각으로 무작정 도전했다. 사전 조사도 없었고 준비도 부족했다. 그럼에도 의지 하나로 이뤄낸 것이 뿌듯함과 교훈으로 자리 잡았다.


  쓰면서 생각해 보니 하니의 배려가 몸소 느껴져 고맙다는 표현을 진심으로 해야겠구나를 느꼈다.


  비록 스쳐가듯 백록담을 보았지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초록 추억을 쌓았다. 눈 쌓인 산은 사랑이고 아름다움 자체다. 산은 겨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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