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필요한 영양제는 먹어야 한다.
나는 영양제를 먹는다. 요즘 영양제 안 먹는 사람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난 조금 많이 먹는다.
내가 영양제를 먹는 것을 보면 모두들 한 마디씩 한다. 영양제가 다가 아니야. 음식으로 먹어야지.
나라고 영양제가 좋아서 먹는 것이 아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상한다.
어려서부터 편식이 심했다. 안 먹는 것이 어찌 그리도 많았는지. 지금도 안 먹는 것들이 있다. 안 먹는다는 표현보다는 못 먹는다고 말하고 싶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으니까! 예를 들자면 닭이나 돼지 요리, 내장으로 만든 음식 같은 것들은 같은 상에 있으면 다른 음식도 먹기가 힘들다. 나도 도저히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와서 보면 내가 HSP였기 때문이다. 냄새, 맛, 모양, 식감 같은 것들에 남달리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못 먹는 음식이 많아진 것 같다. 나이 들면서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힘들다.
가리는 음식 많고, 위장도 약하다 보니 자랄 때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했던 것 같다. 약을 못 먹으니까 영양제 같은 것도 못 먹고 자랐다. 나는 쉽게 표현해서 생기다 만 몸이라고 말한다. 고기 안 먹으니 단백질 부족, 기름기 있는 음식 안 먹으니 지방 부족이다. 호르몬을 만들 재료를 안 주고 살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몸이 너무 힘들고 안 좋은데 아무리 검사를 해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기능의학과에서 몇 년간에 걸쳐서 검사를 하고 또 따로 검사를 의뢰해서 나온 결과들에서는 한결같이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잠을 잘 자야 호르몬이 제대로 만들어진다고 잠에 대한 처방을 받았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음식과 영양제다. 에너지를 만드는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호르몬을 만들 재료들이 필요하다. 검사 상으로는 미량의 미네랄이나 영양소들이 다 부족이다. 영양제를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7년 전부터 영양제를 갖춰 먹으면서 일부 증상들이 나아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능의학과에서 영양제를 처방받았는데 합성 영양제라 그것도 부작용이 있었다. 그 후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제는 천연영양제로만 먹고 있다. 천연 영양제는 거의가 인체 내에서 12시간 정도 머문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하루 2번 먹어야 하는 영양제가 있다. 먹는 영양제가 많아지는 주범이다.
MDS검사만 하다가 이번에는 소변 유기산 검사도 함께 했다. 영양제를 잘 챙겨 먹지만 혹시나 과한 것이 있을까 싶어서 가끔 검사를 한다. 이런 검사를 하면 내 몸에 부족한 영양소를 알 수 있다. 모자란 것은 더 해 주고, 과한 것은 빼주기 위해서. 항상 조심하는 것이 영양제가 과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모자란 것은 다시 채우면 된다. 하지만 과한 용량은 영양제의 종류에 따라 정말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다니던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을 선택했다. 기능의학과 의사들이 각자 접근하는 방법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다른 의사의 의견도 들어 보고 싶었다.
마그네슘, 비타민D, 비타민B6, 비타민B12, 아연 외에도 몇 가지가 심각한 부족으로 나왔다. 이번에 검사를 했던 의사는 적극적으로 부족한 영양제의 용량을 올려서 일단 그릇을 채우는 방향을 강력하게 권했다. 그전 병원에서 별로 크게 나아진 것을 느끼지 못했던 경험으로 해 볼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자극에도 심하게 반응해서 힘들어지는 내 몸의 특이성을 감안해서 처음에는 정말 작은 양에서부터 차츰 늘려가는 방법을 권했다. 치료 용량으로 권장되는 양에서 한참 모자라는 양에서 시작했다.
비타민B5 같은 경우는 보통 사람들이 캡슐 1개를 먹는다는데 나는 캡슐 1개를 열어서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정도 먹는다. 정말 병아리 눈곱만큼이다. 하지만 그 미량을 먹는 것과 안 먹는 것은 차이가 있다. 비타민B12도 아예 제일 작은 용량을 사서 한 알씩을 먹는다. 비타민B12를 먹으면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발바닥이 두꺼워지면서 껍질처럼 벗겨져서 한동안 힘들었다. 도저히 이유를 알 수도 없고, 치료를 할 수도 없었다. 비타민B12를 먹으면서 발바닥이 더 이상 벗겨지지 않고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연은 제일 작은 용량으로 빨아먹는 형태로 먹고 있다. 워낙 잇몸병도 심하고, 목이 안 좋아서 감기 같은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한 선택이다. 코로나 중증으로 죽을 위기를 벗어난 경험은 면역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이 있다. 아연은 잇몸염증이나 알레르기로 인한 눈이나 코의 염증이 심할 때만 매일 먹고 있다. 혹시나 나한테는 과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나름 조절을 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코로나에 걸린 것을 모르고 같이 식사도 하고 일을 했었다. 그때는 눈의 염증이 심해서 아연과 비타민 C를 매일 약간 고용량으로 먹고 있을 때였다. 아연 덕분인지 전염이 되지 않고 지나갔다.
기본 종합 영양제를 먹는다. 하지만 내 몸은 워낙 총체적으로 기본 공사가 안되어 있어서 구멍이 난 영양소가 많다. 거기에 먹은 것을 거의 흡수하지 못하는 별난 몸이란다. 많이 먹어도 빠져나오는 것이 많아서 음식으로는 영양소를 채울 수가 없다. 영양제를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종합 영양제에서 모자라는 영양소는 따로 추가를 하다 보니 당연히 영양제가 많아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타민, 미네랄 같은 기본 영양소이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 의사는 항산화제품을 같이 먹어야 한다고 권하지만, 어쩔 수 없는 영양제 외에는 먹고 싶지 않다. 거기에 항산화제품은 비싸다. 조금 많이! 딸아이가 마늘추출물 영양제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효과가 좋다고 약사들이 권하는 거라고 사서 안기는 바람에 한 달 전부터 먹고 있기는 하다.
유튜브의 어느 약사가 한 말이 너무 위로가 된다. "영양제가 좋아서 먹는 거 아닙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꼭 필요하니까 먹는 거예요."
지금 내 상황이다. 영양제를 챙겨 먹는 거 귀찮다. 그리고 무언가 못 먹을 걸 먹는 거 같아서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당장 마그네슘만 안 먹어도 내 몸은 힘들다고 호소를 한다. 마그네슘이 우리 몸에서 300가지 이상의 일을 한다는데 그걸 안 주면 일을 못하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먹는 영양제다. 마치 건강염려증에 걸린 사람처럼 한심하게 쳐다보며 하는 말에 아직도 상처를 받는다. 아직은 내가 살만한 가 보다. 그런 말에 여전히 상처받고는 사람들이 있는 데서는 이제 영양제를 아예 안 먹으려고 하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