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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되고 싶다

자는 동안 몸은 치료된다.

by 드망

어떻게 백 년 동안이나 안 깨고 잘 수 있을까? 백 년 동안 안 자서 늙지도 않았나? 미인은 잠꾸러기라니까! 나에게도 그런 마법이 있으면 좋겠다. 백 년은 심하고 그냥 매일 잘 자는 정도로만.


요즘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고 보니 내 건강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잇몸 병으로 고생할 때는 백 년 동안 양치를 안 하고 자면 잇몸병이 생기지 않았을까?

왕자가 키스를 하면 입냄새가 많이 났을 텐데.. 관절이 많이 아플 때는 백 년 동안 누워 잠만 자면 관절이 굳어서 일어날 때 엄청 아팠을 텐데.. 뭐 그런 현실적인 생각들. (난 동화책을 엄청 좋아해서 지금도 동화책을 읽는데 이렇게 동심을 깨는 생각을 하다니.. 미안하다!)


내 몸의 모든 문제는 일단 잠만 잘 자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정말 평생 우습게 생각하고 살았던 잠에게 사랑을 주기로 했다. 기능의학과에서 검사를 하기를 참 잘했다. 난 잠을 못 자도 멜라토닌을 먹을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다. 잠을 잘 자게 하는 호르몬이란다. 의사는 제일 먼저 멜라토닌을 처방했다.


50이 넘어가면 멜라토닌이 젊을 때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안 만들어진단다. 그것도 몸이 정상으로 잘 돌아가는 사람이야기다. 의사 말로는 모든 호르몬이 갈 길을 잃고, 헤매는 내 상황은 그냥 멜라토닌이 안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이 낫단다. 우선 2mg 용량을 처방받았다.


처음 병원에서 처방받은 멜라토닌은 잠자리에 들기 전 1~2시간 전에 미리 먹어야 하는 것이었다. 조금 낫다 싶기는 했지만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했었다. 이건 합성 멜라토닌이었던 걸로 밝혀졌다. 한 달을 먹고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잠을 잘 자게 하는 허브와 추출물이 섞인 식물성 멜라토닌을 사서 먹고 있는데 나한테는 이게 더 잘 맞는 것 같다. 이건 자리에 눕기 직전에 먹는 게 더 효과가 좋은 것 같고. 멜라토닌도 사람에 따라서 맞는 것이 있구나 싶다. 다음에는 또 다른 제품을 먹어 보려고 한다. 나한테 가장 잘 맞는 것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원래도 마그네슘을 먹기는 했었다. 의사는 마그네슘 용량을 늘려서 400mg 처방했고, 신경안정 영양제인 테아닌을 함께 먹으라고 했다. 마그네슘은 이완작용이 탁월하다. 마그네슘을 먹으면 잠을 못 자도 몸이 녹아내린다. 어부지리로 혈압까지 내려갔다. mds검사와 소변유기산 검사를 통해 마그네슘 부족이 심각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권장량 그런 거 따지지 말고 고용량을 먹으라고 권했다. 이것도 접수!


잠은 수면 주기를 잘 맞춰줘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자는 시간을 일정하게 하라고 권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10시 안에는 잘 수 있도록 하루 일과를 잘 조절해야 한다고.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가 성장호르몬이 생성되는 시간이라 그 시간에 자야 한단다. 애들도 아니고 나이 들어가면서 무슨 성장호르몬이냐고 했더니 성장 호르몬이 키만 키우는 것이 아니고 나이 들어서도 몸의 노화를 늦추고 향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호르몬이라고 설명했다. 이것도 접수!


기억해 보면 어렸을 때 초저녁 잠이 많아서 아버지가 너는 과수원으로 시집가야 된다고 했었다. 시골로 시집가라는 뜻이었는데 내가 과일을 좋아해서 과수원이라고. 해만 지면 졸아서 저녁 먹는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을 들고 졸다가 혼난 기억도 있다. 그렇다고 깊은 잠을 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졸리기는 한 시간이었다.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면서 내 몸이 원하는 시간에 자지를 못했다. 아예 잠이 갈 곳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기 시작한 지점이다. 내 몸이 원하는 대로 저녁 일찍 자리에 들기로 했다. 지금은 아무리 늦어도 9시 이전에 자리에 눕는다. 저녁에 졸리면 언제든 그냥 자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내 몸이 원하는 시간이니까!


아침에 잠이 깨면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기. 일어나서 활동하고 빛을 쬐기.

멜라토닌은 아침에 잠에서 깨면서 빛을 쬐면 바로 멈추고 다시 15시간 후에 채워져서 밤에 잠을 잘 수 있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활발하게 움직여 주면서 멜라토닌에게 아부를 한다. 베란다 창문을 열며 환기를 시키는 것이 제일 효과가 좋은 것 같고. 낮의 햇빛도 멜라토닌 형성에 중요하다. 15~20분 정도 햇빛을 받으며 걷는 것도 필요하다.


밤에 잠이 안 오면 누워 뒹굴지 말고 일어나 책 읽기. 낮에도 잠깐 30분 정도 외에는 침대에 눕지 않기.

자지 않으면서 침대에 누워 있으면 우리 뇌는 침대는 잠을 자는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게 정말 힘든 구간이었다. 원래 약골이라 중간중간 침대 신세를 항상 져야 하는 삶이었으니까! 너무 힘들 때 30분 유튜브 수면 영상을 들으며 쉬는 것 외에는 침대에 눕지 않기로 했다. 대신 거실의 암체어에 기대서 살짝 쉬어주는 걸로 대신하기. 보름쯤 전에 갑자기 자다가 깨서 영 잠이 안 오길래 일어나 책을 읽었다. 그냥 읽다 보니 한 권을 다 읽어버렸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낮에 밀크티를 마셨었다. 잠과 연애를 시작하면서 디카페인 커피도 끊었는데!

카페인이 들어 있는 모든 것에 빨간딱지다!


잘 때는 빛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안대를 한다. 암막 커튼보다 더 확실한 것이 내 경우에는 안대다. 의사는 잘 때 절대 빛이 눈에 비치지 않도록 철저하게 빛을 막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보통 안대와는 조금 다른 안대를 쓰는데 별명이 기절안대다. 부드러운 촉감과 가볍게 머리를 감싸는 느낌이 안정감을 준다. 귀까지 가볍게 감싸주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자야 하는 곳에 갈 때는 1번으로 챙기는 보물이다.


나는 평소 생각이 그냥 많은 사람이다. 생각에 전방위 공격을 받는다고 보면 맞을 것 같다. 입면장애가 심해서 잠이 안 온다고 이 생각 저 생각 따라다니다 보면 어떨 때는 밤을 꼬박 새울 때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유튜브에서 성경 구절 말씀을 읽어주는 것을 들으며 잠든다. 코지 타이머를 한 시간에 맞춰 놓으면 성경 말씀이 들리다가 한 시간이면 저절로 폰이 꺼지기 때문에 자다가 방해받을 일은 없다. 처음에는 한 시간이 지나서 다시 코지타이머를 맞췄었다. 지금은 거의 그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잠이 든다. 내가 이겼다!


자기 전에 숙면을 돕는 스트레칭을 가볍게 한다. 잠을 잘 자게 한다는 귀마사지도 하고.

마지막으로 성경을 들으며 깊은 호흡을 잠들 때까지 한다. 4-7-8이니 4-6이니 하는 말들을 따라서 처음에는 그 숫자 세다가 더 말똥말똥 해지는 경험을 했다. 성경 말씀을 새겨들으며 그냥 들이마시는 호흡은 조금 짧게 내뱉는 호흡은 내 숨이 닿는 데까지 길게 하는 걸로 타협을 봤다. 지금은 잠이 드는 시간이 많이 빨라졌다.


내 몸을 살리기 위해, 황금보다 더 귀한 시간, 숙면을 얻기 위해 몇 달간 노력을 했다. 처음에는 이게 애쓴다고 되는 일인가 싶어서 건성건성 그까짓 거 대충이었다. 몸이 더 힘들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공을 들여 잠에게 프러포즈를 하기 시작했다. 내 정성이 통했는지 지금은 잠이 어느 정도 나의 애정 공세를 받아 주고 있다.

밤에 자다 깨는 일도 많이 줄었고, 자다가 깨면 그대로 깨서 새우던 습관도 안드로메다로 갔나 보다. 잠깐 깨도 언제 다시 잠드는지 알람을 듣고 깨면 일어날 시간이다. 축복이 따로 없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나이가 들어서 이미 잠에 빨간불이 켜지는 지점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그래도 끝까지 해 보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 무거운 느낌이 조금씩 걷어지는 느낌이 너무 신기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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