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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면 용감하다

건강관리에도 때가 있다.

by 드망

살면서 후회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상 어느 사람인들 후회 없이 잘 살다 간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나이 들어가면서 건강관리를 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 가장 큰 후회다.


젊음이 좋기는 좋았다. 원래 약골로 태어났고, 모든 약은 거부하는 특이체질에, 주변 상황에 너무 민감한 민감보스 HSP까지. 몸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조건을 다 갖추고도 어찌어찌 살아왔다. 젊었으니까! 그때는 그나마 젊어서 버티는 건 줄 모르고 그냥 어떻게든 살아지는 줄 알고 살았다. 힘들어 죽을 거 같아도 살아는 지길래 평생 그렇게 살면 될 줄 알았다.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이 구강이었다. 1년에 두 번 케일링만 잘하고 살았어도, 치간칫솔 쓰고, 치실만 잘하고 살았어도 이렇게까지 무너질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보니 내가 정말 한심하다. 나는 충치균보다는 잇몸병을 일으키는 균에 아주 취약한 체질이라는 것도 치과를 드나들면서 알게 됐다.


식구들 병간호는 정말 잘했는데.. 내 몸을 돌보지 않은 대가다. 구강세균이 몸 안의 만성염증의 원인이 된다는 것만 알았어도 내 태도가 좀 달라졌을 것 같다.


치매 시어머니를 돌보며 어깨, 목, 허리, 무릎 관절이 무너졌다. 팔과 어깨가 너무 아파서 젓가락질조차 못하고 1년을 자내야 했다. 어차피 아파도 약도 못 먹고, 주사도 못 맞는 특이체질이라 치료를 못 받는다고 실비 보험도 들지 않았었다. 도수치료, 신경치료를 보험 없이 하면서 정말 거금을 깨 먹었다. 근육이 없는데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렇단다. 말하자면 살이라도 있는 것이 다 으깨진 두부처럼 되었다는 말씀! 그나마 정말 죽을 노력을 해서 지금은 그럭저럭 살만하다.


그다음은 머리다. 치매 걱정이 많다. 치매 시어머니를 10년 가까이 간병하고 보니 치매에 대한 접근이 남다르다. 시어머니를 모시며 치매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다. 치매는 증상이 나타나면 이미 20년 가까이 진행이 된 상태라는 것을 알고는 너무 놀랐다. 40이 넘어가면 일부러라도 머리를 써서 치매 예방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치매 예방을 시작해야 될 나이에 머리 쓰는 것을 멈췄다.


치매 시어머니 간병에, 딸도 아팠고,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아들이 외고를 다녔다. 영어 숙제를 하면 항상 나에게 보여 주고 고칠 건 고쳐서 제출했었다. 문법적인 부분은 잘 몰라도 작문한 글의 문맥을 잡아주는 정도였다. 어렵지만 온갖 기억을 끌어올리고, 머리를 짜내며 숙제를 도와줬었다. 고2가 된 어느 날, 그날도 5장 정도의 작문 숙제 한 것을 가져와서 봐달라고 했었다.


그날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너무 피곤했고, 힘들었다.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엄마가 이제 너무 힘드니까 봐달라고 하지 마라고 말했다. 그 날이후로 내 머리는 편해졌다. 더 편해지려고 깊이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그때 멈추지 말아야 했다. 머리를 쥐어뜯어서라도 했어야 했다.


지금은 깊이 생각하는 것이 힘들다. 물론 조금이라도 깊이가 있는 책도 읽기 어렵다. 그냥 가벼운 소설 정도.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이것도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잠을 우습게 생각했던 것도 무식해서였다. 잠이 우리 몸이 회복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몰랐다.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당연히 잠을 줄였다. 평생 잠을 잘 자본 적도 없다. 잠이 오면 그냥 토끼잠 잠깐 자면 그게 전부였다. 어차피 잘 자지도 못하는 잠이라 미련도 없었다. 쪽잠으로 때워가며 긴 시간을 살았다.


잠을 우습게 생각한 대가는 처절하다. 여러 가지 증상으로 이것저것 검사를 많이 했다. 의사들의 한결같은 조언은 무엇보다 잠을 잘 자야 한단다. 몸이 회복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자율신경실조증도 신경이 쉬지를 못하고 계속 액셀레이터를 밟은 형국이란다. 하다못해 치과에서까지 잇몸병이 나으려면 잘 자야 한다니..

내가 잠을 못 자는 사람이라고 얼굴에 쓰여 있기라도 한 건지 이쯤 되면 진짜 궁금하다.


먹는 것도 대가를 치르고 있다. 원래 편식이 심하다. 비위가 약해서 내가 만져서 요리한 고기나 생선은 못 먹는다. 오로지 야채다. 단백질 섭취를 거의 안 하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감당해야 하는 일은 많고, 배는 고프고 힘들었다. 간단하게, 즐겁게 계속 빵을 먹었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빵순이다.


빵순이의 삶은 콜레스테롤 수치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따라서 혈압도, 당도 동반 상승이다. 지금은 조심한다고 하지만 워낙 빵을 좋아해서 빵순이의 삶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단 빵은 먹지 않는다. 되도록이면 통밀이나 잡곡빵을 발사믹이나 코코넛, 올리브오일에 찍어 먹는다.


단백질 부족은 근육 부족의 문제만이 아니다. 단백질은 우리 몸의 3천 가지 호르몬을 만드는 중요한 재료다. 원료 공급이 안되니 몸이 파업을 할 수밖에! 지금은 단백질을 잘 챙겨 먹으려고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한다. 닭똥 냄새난다고 안 먹던 달걀을 매일 1개씩 먹고 있으니까. 진작 잘 챙겨 먹었으면!


건강관리를 하려면 뭘 좀 알아야겠기에 책도 보고, 유튜브도 본다. 나름 공부를 하고 있다. 알아가면 갈수록 결론은 하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진작 알았더라면 이렇게 몸이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거다. 왜 가족들 간병을 하면서는 공부도 하고 좋다는 거 열심히 해 보기도 했는데 나한테는 이렇게 잔인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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