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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HSP다.

아는 것이 힘이다.

by 드망

나는 예민보스다.

몸도 예민하고 마음도 예민하고, 어느 것 하나 편한 것이 없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다. 그냥 나는 유달리 예민한 사람이니까 최대한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살아가는 것. 내가 살아오면서 항상 마음속에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살아왔다.


내 마음이 예민한 거야 나 혼자 아프고 괴로우면 최대한 티 안 내고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몸이 예민한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어느 것 하나 편한 것이 없다. 정말 애를 쓰고 또 써도 피냄새만 맡으면 얼굴이 백지장이 되고 숨을 쉬지 못하니 같이 장 보러 갔던 아줌마들이 질색을 했다. 같이 유자차나 모과차를 마셔도 나는 그 약성에 어지러워서 일어나지를 못한다. 유자차, 모과차에 따뜻한 물을 더 부어서 희석해서 마시는 나에게 또 별나다고 했다. 같이 음식을 먹을 때도 냄새가 조금만 이상하거나 모양이 이상하면 속이 울렁거려서 아예 먹지를 못한다.


청각도 예민해서 전화벨 소리에도 머리가 울리는 것 같아서 내 전화는 항상 진동이나 무음 상태다. 소음이 심한 곳을 유난히도 꺼려하는 이유다. 남들은 재래시장 가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데 나는 그 소음이 고통이다. TV를 봐도 영화를 보러 가도 자막을 선호한다. 더빙 같은 경우는 귀가 웅웅거려서 거의 알아듣기가 힘들다.


피부도 예민해서 긴팔을 입고 풀밭을 걸어도 알레르기로 가려움증이 생긴다. 당연히 화장품도 아무 거나 쓸 수가 없어서 유아 용품을 썼었다. 아마도 화학적인 첨가물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천연 화장품 정도로 타협하고 있다.


보통 약이라고 하는 처방약은 거의 못 먹는다. 항생제, 소염제는 먹으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냥 눈물 콧물 흘리면서 몇 날 며칠을 그 약이 몸에서 다 빠져나갈 때까지 앓아누워 있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약을 못 먹으니 안 아프려고 정말 노력한다. 남들이 나에게 건강염려증이라고 비웃는다. 전에는 그 말을 듣기 싫어서 그냥 남들처럼 하다가 심하게 앓아누워서 시간을 많이도 허비했었다.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사는 방법을 택한다. 그래도 요즘은 딸아이가 정말 많은 검색과 시도 끝에 내가 먹을 만한 천연영양제를 찾아내서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사람이 많은 곳은 정말 힘든 난코스다. 장 보러 가는 것이 고역이다. 여자들은 쇼핑을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는데 나는 쇼핑을 가야 하는 것이 스트레스다. 누가 입던 옷을 주면 너무 좋아해서 다들 내가 옷 사입을 돈 안 쓰려고 그러는 줄 알고 그렇게 살지 마라고 충고를 한다. 사실은 내가 옷을 사러 오가는 길과, 낯선 직원을 상대해야 하는 일과 나에게 맞는 옷을 고르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그 모든 시간이 엄청난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말하면 핑계라고 말도 안 된다고들 한다. 나는 진지하다!


신경이 예민해서 스트레스는 혼자 다 받는다. 오랜 시간 이렇게 시달린 덕분에 부신피로와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병을 얻었다. HSP들은 거의가 부신 피로나 자율신경실조증을 겪는다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주변에서 항상 듣는 말, 별나다. 유난 떤다. 관심받고 싶어서 쑈 한다.

그 말이 듣기 싫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느라 더 힘들게 살았다.

내가 살기 위해 당당하게 못 먹는다. 안 간다. 안 한다. 아니 못한다는 말을 못 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며 평생을 움츠리고 나 스스로를 학대하며 살았다.


내가 HSP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나서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HSP - HIGHLY SENSITIVE PERSON

검사 항목을 체크해 본 결과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초민감한 몸과 마음의 선두주자쯤 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가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했던 이유가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냥 내 몸이 그렇게 태어난 것뿐이었다. 처음부터 생기기를 그렇게 생겼으니 내가 아무리 아닌 척 해도 기본값에서 차이가 난 것뿐이었다. 전두엽의 문제라고 한다. 80% 이상이 유전 때문이 라니 그냥 타고난 모습일 뿐이다. 관종이 아니라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내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 별나다. 유별나다는 말에 전처럼 마음이 움츠러들지 않기로 했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나를 지키는 것뿐이다. 그렇게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매 순간 나에게 인식시킨다. 이미 나를 학대하며 내 삶의 좋은 날을 다 보냈다. 이제부터는 내 삶에 위로를 주기로 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살아내야 할 내 삶이라는 것을 매일 나에게 말해 준다.


HSP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감정이 예민했기에 남들이 누리지 못했던 것을 누릴 수 있었음도 알았다. 작은 들꽃 하나에도 가슴이 아련하고, 피부를 스치는 산들바람에도 가슴이 설레었고, 음악을 들으면 빨려 들어가는 환희도, 좋아하는 그림만 보면 가슴이 요동치는 그 모든 순간이었다. 남들은 그것도 별나다 했지만,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혼자 행복했었다.


평생 내 몸의 예민함이 저주라 여겼다. 이제는 그것이 축복이었다고 받아들인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렸으니까 이만하면 플러스 마이너스 해서 본전은 찾은 셈이라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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