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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끄로 Feb 08. 2024

계획형 인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솜에게


 오늘은 너의 Birthday야. 아침부터 네가 자는 사이에 미역국을 준비하느라 바빴어. 사실 즉석 미역국에 뜨거운 물만 부었어.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햇반, 고추참치, 깻잎장아찌를 꺼냈지. 인스턴트로 만든 생일상이지만 아주 맛있었어. 역시 해외에서 먹는 한식이 최고야.


 오늘 하루 중 가장 어려웠던 미션은 너 몰래 생일케이크 사기였어. 둘이서만 여행을 다니니까, 무슨 핑계를 대고 떨어져야 할지 모르겠더라. 일단 여행 동선에 있는 케이크 가게를 모두 지도에 저장했어.


 그러다 오후쯤 기회가 생겼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큰 서점이라니. 책을 좋아하는 너를 혼자두기에 안성맞춤이었지. 우리는 1층에서 서로에게 써줄 엽서와 각자의 기념엽서를 골랐어. 그리고 너는 마그넷, 나는 배지를 샀지. 2층으로 올라가서는 책을 구경하는 너에게 급똥 신호가 왔다 말하고 케이크집으로 향했지. 나는 똥쟁이니까 꽤 신빙성이 있을 거라 믿으면서.


 카페 쇼케이스에는 정말 많은 케이크가 있었어. 하지만 난 고민할 시간이 없지. 뚜벅이에게 홀케이크는 사치니까 조각케이크를 샀어. 하나는 러시아에서 유명한 나폴레옹 케이크. 다른 하나는 그냥 맛있어 보이는 걸로 구매했어. 케이크를 사서 서점으로 돌아가는 데 다시 비가 오더라. 케이크 박스가 젖지 않도록, 후다닥 뛰어갔어. 화장실 다녀온 녀석이 이상한 박스를 들고 있는데도, 너는 모르는 척하더라. 그래서 나도 자연스레 모르는 척하며 서점을 구경했어.



 다음 일정은 마트에서 장보기야. 아침 생일상은 간소했지만, 저녁은 호화로워야 하니까! 우리는 숙소에서 가까운 마트 중 가장 큰 곳을 찾아갔어. 목살, 토마토, 치즈, 샐러드, 계란, 그리고 요거트까지 샀어. 우리 이제 곧 떠나는데, 다 먹을 수 있겠지? 오른손에는 비닐봉지, 왼손에는 케이크박스를 들고 숙소로 향했어. 케이크를 들고 좀 험하게 걸어서, 케이크가 무너졌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멀쩡하더라!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마린스키 극장’으로 향했지. 공연을 좋아하는, 아니 공연에 미친 너의 생일을 맞아 우리는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 공연을 예매했지! 나는 너처럼 공연을 좋아하진 않지만, 러시아의 발레를 직접 보고 싶기도 했고.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극장이 ‘마린스키’라니까 안 갈 수 없더라.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걸 워낙 좋아하니까.


 우리 자리가 무대랑은 좀 멀어서, 완전히 몰입하진 못했어. 사실 중간에 몇 번 졸뻔했어. 너는 어땠니? 가까이서 봤으면 더 좋을 것 같긴 하더라. 그래도 흥미로운 경험이었어. 무엇보다 그런 오래된 극장에 가보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잖아.



 숙소로 후다닥 돌아와서 저녁을 만들어먹었어. 너의 생일파티지만, 음식은 거의 네가 했지. 너는 중학생 때부터 요리를 참 잘했어. 나는 아직도 ‘실과’ 시간에 네가 만든 소고기 주먹밥의 맛을 잊지 못해. 그때부터였나, 너랑 친구가 되었던 게..?


 오늘은 목살을 굽고, 계란말이를 하고, 카프레제랑 샐러드까지 만들었어. 아 그리고 비빔면 매운맛까지 곁들여 먹었지. 이거 2인분 맞나? 싶었는데 다 먹은 우리. 멋지다. 마지막으로 내가 몰래 사온 케이크를 꺼내 생일축하노래를 불렀어. 어때, 이만하면 완벽한 생일이지? 나도 언젠가 해외에서 생일을 보내보고 싶다! 기회가 있겠지! 그때는 네가 내 생일 챙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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