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고도 쓸쓸한 이야기.
농부가 폭풍우 때문에 집에 갇혀서 양식을 구하러 나갈 수 없었다.
그는 먼저 양들을 잡아먹었다. 그 이후에도 폭풍우가 지속되자 염소들도 잡아먹었다.
그래도 폭풍우가 약해지지 않자, 세 번째로 함께 농사를 지었던 소들에게로 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개들이 말했다.
"우리는 여기를 떠나야 해. 주인이 함께 일했던 소들까지도 잡는데, 어떻게 우리를 살려 주겠어?"
어쩐지 웃고 넘기기엔 으스스한 이야기네요.
최근 지인으로부터 들은 모 회사에서 벌어진 상황과도 흡사해서 더욱 와 닿았습니다. 시장 환경의 변화로 사업이 조금 어려워진 조직이 새로 온 경영진에 의해 순식간에 해체, 재구성되면서 원래의 경쟁력마저 잃어버린 이야기였어요. 비용 '효율화'를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입성한 그들은 소위 ‘업의 본질’에 대한 파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대적인 인사 개편을 단행하였답니다. 그 조치의 일환으로 겉 보기에 작은 팀들을 비슷한 기능을 할 거라고 자체 판단한 다른 팀에 별다른 설명 없이 흡수합병 시키면서 조직의 수와 인원을 줄였다는군요. 갑작스러운 조치로 업무 영역과 R&R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 가령 A팀 리더와 합쳐지는 B팀의 리더 중, 누가 새로운 팀의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 또한 있는데, 그 결정 또한 매우 자의적으로 별 기준도 없이 진행했다고 하네요. 그간 사내 정치(?)를 해왔던 리더거나, 둘 중 나이가 어린 쪽이 리더로 지정되었답니다. 소위 ‘영리더’를 육성하고, 그들을 앞세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언론에 표명한 때라서 더욱 그러했다는군요. 그렇게 팀들은 사라지고, 직원들은 감원이든 자발적 퇴사를 통해서 서서히 조직은 쪼그라들었다고 해요. 도리어 이젠 일할 사람이 없다고 다시 채용을 하는 분위기까지 있다고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1년이 지난 시점, 그 조직은 위기를 벗어나서 그토록 소원하던 조직 효율화의 꿈을 이루었을까 되물으니… 답은 ‘전혀 아니다’ 였습니다. 무턱대고 조직을 합치니 팀의 규모는 커졌으나, 준비도 안된 리더가 케어할 수 있는 한계 범위를 넘어나면서 조직과 인력 관리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 사각지대에서 흔히들 말하는 ‘콰이어트 퀴팅’인 인력이 생겨나고, 자신의 전문 영역이 아닌 부분까지도 커버하려니 성과나 효율이 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과거 다른 팀이었던 팀원들과도 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여전히 물과 기름인 채로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가장 기대했던 비용 효율화는 별로 이루지도 못한 것이, 원래 회사가 어려움에 처한 것은 인건비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랍니다. 이전에 잘못 내린 투자 결정으로 차입이 늘어나는데, 시장 환경 또한 녹록치 않아지면서 기존 사업은 어려워지면서 매출이 줄어든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요. 그것을 손쉽게(그러나 무리하게) 인력과 팀을 줄여서 극복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어처구니 없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 조직에서 수년 간을 로열티를 가지고 일해 온 시니어랑 리더급들을 홀대하고 내보내면서, 똘똘한 젊은 인력들은 오히려 자각의 계기를 갖게 되었다고 해요. 저렇게 충성스럽고 일도 무리없이 해냈던 선배들을 보니 그 다음은 본인들 차례겠구나,라구요. 그래서 제 지인의 후배들이 지금까지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요. 조직이 제일 내보내지 말아야 할(내보내기 싫은)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떠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씁쓸했습니다. 과거 비슷한 경험이 있던 저도 그 때의 불쾌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했고 앞으로 또 닥치지 말란 법이 없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게 좋을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열과 성을 다해 회사 일에 몰두하기 어렵다(싫다)는 것이 주위 지인들의 한결같은 정서입니다. 그래서 각자도생하자는 마음으로 제2,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직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고 언제든 떠날 수 있게 나만의 무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식이 이젠 상식이 된 것 같네요.
오늘은 그저 막막하고 답답한 이야기만 들려 드려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한번쯤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뭔가 그럴듯한 답은 없지만, 그래도 유비무환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