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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elyn H Jan 02. 2024

일, 일단 정의부터 하자구요.

해본 사람과 안해본 사람 간 차이가 크다는 그것.

저는 서른을 조금 앞둔 이십대 후반,
겨우 구직의 관문을 넘었습니다.

남들보다 좀 늦된 사회 생활 시작엔 나름 사정이 있지만, 여기서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그 시절 나는 어떻게 '일' 혹은 '직업'을 정의했었나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일을 대단히 거창하고 숭고한 어떤 것으로 여기진 않습니다만, 그 때는 생각이 쥐꼬리 만큼이나 짧을 때라, 아예 '일은 나에게 이러저러한 의미지' 라는 자각조차 하지 못했네요. 부끄럽습니다.

독립과 생계를 위한 수단인 동시에,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때가 되어 하고 있는 일종의 '흔한 과제' 정도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을 나만의 언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자문해 보니, 이거 꽤나 어렵더군요.

명쾌한 정의가 단박에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우선 국어 사전을 살펴 보았습니다.

[일]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

[직업] 생계 유지를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전통적 의미로야 틀린 구석이라곤 없지만, 어쩐지 기계적이고 건조한 정의로 느껴집니다.

게다가 요즘처럼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일의 의미와 위상은 저마다 다를 것이기에, 만족할 만한 포괄적 정의를 내리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N잡러' 도 늘어나는 추세고, 직장이 곧 자신의 고유한 '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다른 분들은 어떠하신지 궁금하여 물어보니, 이런 대답들이 돌아왔습니다.   

"선배님, 저 진짜 이 일이 천직인 것 같아요. 자아실현을 하려는 게 일의 궁극적 목적 아닐까요."

"아직 꿈이 없어서 일단 이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으려구요. 하다보면 방향성이 보이겠지요."

"저는 워라벨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에요. 직장에서의 일은 퇴근 후 삶을 위한 것 뿐이구요."


이렇듯 사람마다 일에 대한 관점은 다양하지만,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 하는 것은 없겠지요.

나 자신을 오롯이 책임지기 위해선 반드시 일(돈)이 필요하니 생계유지가 직업을 갖는 최우선 목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일 = 생계 수단이라는 1차적 의미만 있다면 삶이 어쩐지 쓸쓸하고 공허할 것 같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조직생활을 꽤 즐거워 하는 타입의 사람입니다.

즉,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뭔가 함께 하는 것이 인생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믿는 편입니다.

학창시절에도 방학 중반 즈음부터는 슬슬 지루해지면서 '아, 반 친구들 만나서 신나게 놀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으니까요. 아이가 할 '일'은 '노는 것'이니까, 그 땐 제법 충실한 생각을 했군요.


결국 크든 작든 자신만의 역할을 맡아 다른 이들과 하모니를 이루면서, 공통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저에겐 일의 의미이고 정의입니다. 조금 협소한 정의지만요.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면 자기 효능감이 생기고, 스스로 동기부여 하면서 저절로 성장하게 되는 이른바 ‘선순환’을 맛보게 되는데, 그것이 결국 일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중요성을 부정할 순 없겠지만, 연봉과 직위만이 일의 전부는 아니지 않을까요.

 

이제 저는 머지 않은 근미래에 새로운 일을 하게 될(그래야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시기에 와 있습니다.

20년 이상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좌충우돌하며 많은 일을 하고 역량도 쌓아 왔다고 자부하지만, 한편으론 지금과 다른 낯선 환경에 이른바 '소프트랜딩'할 수 있을지, 약간의 두려움이 스미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새롭게 발견한 일과 그 의미를 멋지게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기대와 설렘, 그리고 어떻게든 잘 되겠지! 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꼬옥 끌어안고요.


여러분에게 일은, 혹은 직업은 지금 어떤 의미인가요?


이전 01화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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