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에세이
암사동의 골목 안쪽, 이곳에 카페가 있을 줄은 몰랐다는 생각이 들 만한 곳에, 규모도 작지 않은 '카페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이 카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명절 때였다.
아마도 설이었던 듯하다. 시댁에서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고 배가 너무 불러서 느끼함을 달래줄 커피가 간절하게 마시고 싶었다. 설 당일 문을 연 곳이 있을까 싶어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카페가 하나 있었다. 인터넷에서 ‘연중무휴’라는 설명을 보고는, 그래도 설날 당일에 개인 카페가 열었을까 싶어 의심이 들었지만, 산책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정말 카페는 영업 중이었고, 커피를 주문하자 어떤 원두로 하실 거냐고 물었다. 약간의 산미가 있는 원두를 주문했더니,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공 모양의 커다란 얼음이 얹어진 독특한 모습으로 나왔다. 솔직히 주문할 때는 큰 기대가 없었지만, 커피가 나오자 ‘어라?’ 하는 마음이 들었다. 커피를 한 입 들이켜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고, 기름진 속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듯한 기적을 맛보았다. 은은한 산미가 상쾌하게 입안을 감돌았다. 주문받을 때부터 원두를 물어본 것에서 알아챘어야 했는데, '카페 이유'는 결코 그저 그런 커피를 파는 동네 커피집이 아니었다.
그제야 카페 안을 유심히 둘러보니, 한쪽에 로스팅 기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판매하는 전문 카페였다. 게다가 영업한 지도 오래되었다고 하니, 사실 이 카페는 나만 모르는 이 골목에 터줏대감 같은 곳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는 명절 때마다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 산책을 핑계 삼아 '카페 이유'에 들르는 것이 하나의 코스가 되었다. 이곳은 다양한 커피 메뉴는 물론, 밀가루 대신 쌀가루로 만든 케이크도 직접 구워서 판매하고 있다. 매번 배가 불러 아직 시도해 보지는 못했지만, 다음에는 꼭 여유롭게 커피와 함께 즐겨 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찾았을 때는 살짝 리모델링이 되어 있고 키오스크도 생겼지만, 여전히 커피는 내속을 산뜻하게 내려준다. 앉아서 커피를 즐기다 보니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포장 손님도 많았다. 이곳이 암사동의 '커피 맛집'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분명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이곳을 찾을 이유는 변함없이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