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땐 그러지 않더니 나이가 들면서 변해버린 남편 네모남자가 휴가를 내겠다고 말했다. 네모남자는 언제부터인가 계절마다 자연 명소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봄에는 꽃이 만개한 곳, 여름에는 뜨거운 햇살을 피해 시원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눈 덮인 풍경을 보고 싶어 했다. 물론 나도 자연을 좋아한다. 자연을 즐기는 건 좋지만, 벚꽃이든 단풍이든 그 시즌을 놓친다고 해서 크게 아쉬워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네모남자는 달랐다. 가을을 만끽하고 싶다며 휴가까지 내겠다는 열정에 나는 그만 기세에 밀려 수목원을 예약하고 말았다.
바람은 약간 쌀쌀했지만 햇살은 따스하고 하늘이 맑아 산책하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수목원 주차장은 이미 자연을 즐기러 온 차량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침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숲 해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직전이라, 궁금했던 것도 있어 해설에 참여하기로 했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수목원 입구부터 은은하게 퍼지던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향에 관한 것이었다. 해설사님께 "이건 무슨냄새인가요?"라고 여쭤보니, 그 향은 계수나무에서 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잎이 노랗게 물드는 시기에 당 성분이 밖으로 분비되면서 나는 독특한 향기라고 했다.
해설사님의 다양한 설명을 들으며 수목원을 천천히 걸어 다녔다.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질문을 하면서 산책을 즐기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해설이 끝날 무렵, 해설사님은 수목원 안쪽에 있는 육림호 근처를 추천하며 그곳에 작은 카페가 있으니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전나무 숲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수목원을 더 만끽해 보라고 덧붙이셨다.
전나무 숲에서 피톤치드까지 실컷 맡고서 바로 호수 앞의 '육림호 카페'로 갔다.
카페는 통나무로 지어진 산장 형태로, 내부는 넓고 빈자리도 많았지만 우리는 자연과 조금 더 가까운 야외 좌석을 선택했다. 다들 우리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대부분의 손님이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고 있었다.
평일이라 직원 한 분만 계셨기에 커피가 나오기까지 약간 시간이 걸렸지만, 기다림마저 여유로운 기분을 주었다.커피 맛은 특별히 튀지는 않는 무난한 맛이었지만, 맑은 공기 속에서 수목원을 산책한 후 마시는 커피는 그 자체로 충분히 좋았다. 특히 발코니 앞으로 보이는 나무의 나뭇잎과 그 사이로 반짝이는 호수의 윤슬이 커피의 맛을 풍부하게 해 주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기니 마음이 흐물흐물해졌다. 그 순간, 바로 다시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오겠다고 마음먹고 예약까지 해버리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자연은 중년에게나 인기 있는 곳이란 것을 망각하고 말이다.
어쨌거나 가을의 정취를 온전히 즐기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국립 수목원의 육림호 카페는 단풍을 보러 가야 한다고 휴가까지 낸 네모남자도 맘에 들어했으니까 말이다.
*주말에 아이들과 가보니 사람이 정말 많아서 앉을자리가 없어서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만 들었습니다.^^;; 육림호 카페가 궁금하신 분들은 주말에는 일찍 방문하시거나, 아니면 평일에 가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