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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파이는 여기, 그래스하퍼 베이크샵

그림과 에세이

by Riro



네덜란드 여행에서 먹었던 겉이 바삭한 애플 턴오버를 잊지 못한다는 글을 카페에 올린 적이 있다. 그때 음식을 잘 아는 한 분이 댓글로 분당 정자동에 있는 '그래스하퍼 베이크샵'의 애플파이가 아주 맛있다며, 기회가 된다면 네덜란드에서의 맛과 비교해 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이름부터 특이한 ‘그래스하퍼 베이크샵’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분당 정자동은 거리가 있어 처음에는 선뜻 가볼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위치 정도는 확인해보자 싶어 검색을 해보니, 집 근처에서 출발해 카페 근처에 내려주는 직행버스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맛있는 애플파이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직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분당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정거장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안내 방송을 귀 기울여 들인 덕에 맞는 정류장에서 내려 한 번에 가게를 찾아갈 수 있었다. 카페에 들어서자 노란빛이 공간을 감싸는 듯한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다양한 빵들이 카운터에 가득 진열되어 나를 반겼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애플파이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으니 휘핑크림이 듬뿍 올라간 커다란 애플파이 한 조각이 나왔다. 포크로 파이를 떠보니 포크가 파이로 들어가는 순간 겉면의 파이지가 바스락하며 부서졌다. 포크로 뜬 파이 한 입 베어 물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시나몬 향이 은은히 퍼지는 달콤한 사과 필링이 묵직하게 입안으로 녹아들었다. 네덜란드에서 먹었던 애플 턴오버는 사과 필링이 적고 비교적 가벼운 맛이었던 반면, 그래스하퍼의 애플파이는 속이 훨씬 풍부하고 묵직한 맛이었다. 하지만 파이지의 가볍고 바삭한 식감은 네덜란드에서의 기억을 충분히 떠올리게 했다. 달달한 필링이 입안에 가득 찼을 때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 단맛이 적당히 중화되며 둘의 조화가 더욱 완벽했다.

이 애플파이 하나를 먹기 위해 일부러 버스를 타고 온 보람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카페는 서초동 남부터미널 역 앞으로 이사를 했다. 새로 생긴 매장은 이전보다 넓었지만, 기존의 따뜻한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곳곳에 놓인 파릇한 식물들이 따스함을 더했고, 깜찍한 소품들이 공간과 잘 어울렸다. 여전히 카운터에는 다양한 빵과 디저트가 진열되어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 카페에서 애플파이 말고 먹어봐야 할 것은 샌드위치이다. 샌드위치 빵도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과 안의 샌드위치 속과 잘 어울린다. 한 번은 시그니처 커피라고 소개된 아이스 카푸치노를 주문했는데, 단 음료를 즐기지 않는 나에게는 꽤 달게 느껴졌다. 하지만 부드럽게 조리된 닭가슴살이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는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특히 추천하고 싶은 메뉴는 아스파라거스 샌드위치이다. 이 샌드위치는 길게 구워진 아스파라거스 세 개가 빵 밖으로 삐져나온 약간 좀 엉성해 보이는 모습이다. 여기에 발사믹에 조린 구운 버섯이 함께 들어가 있는데, 이 둘의 조합이 엉성한 외관과는 달리 상큼하고 아삭한 완벽한 조화의 맛을 낸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이 메뉴는 아스파라거스와 버섯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만 아니라면 모두가 만족할 것이다.


‘베이크샵’이라는 이름답게 이 카페의 애플파이와 샌드위치 다른 디저트류나 빵도 맛도 좋고 보기도 좋다. 커피도 빼놓을 수 없는데, 특히 디저트와의 밸런스가 훌륭하다. 물론, 서초로 옮겨서인지, 물가가 올라서인지 가격대가 조금 높아졌다. 그래도 누군가 “어디 애플파이가 제일 먹고 싶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래스하퍼 베이크샵이요!”라고 답할 것 같다. 바삭한 파이지와 사과 필링이 가득한 조합은 단순한 디저트를 넘어 진한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애플파이와 함께할 커피는 언제나 아메리카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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