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갑자기 음식을 먹으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얼굴 주위로 두드러기가 생겼는데, 점점 심해져서 기도가 붓고 숨을 쉬기 어려워져서 응급실을 들락날락하는 일이 한동안 반복되었다. 응급실과 외래의 반복으로 몇 달을 보내고 음식에 반응하던 알레르기가 잠잠해지더니, 이제는 인공향을 맡기만 해도 숨을 쉴 수 없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외래일에 진료실에서 "선생님 숨을 못 쉬겠어요. 향이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하죠?"라고 한숨과 함께 증상을 토로했다. 나의 선생님은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 확인을 더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혜화동의 다른 병원을 추천해 주면서 병원을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병원을 옮긴 뒤, 다시 지겨운 검사와 외래 진료가 시작되었다. 진료가 있는 날이면 병원 근처에서 간단히 식사와 커피를 해결할 곳을 찾곤 했는데, 마침 ‘모자이크 베이커리 율곡점’이 근처에 있었다. 이곳은 살구색 외벽과 차양이 은은한 살구색이어서 멀리서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었다
베이커리이기 때문에 들어가자마자 외벽과 같은 살구색의 빵 진열대가 보인다. 바구니에 옹기종기 빵들이 놓여있다. 빵과 음료의 종류가 많아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배가 고파 샌드위치와 라테를 시켰다. 주문을 받아주는 점원이 친절해서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종이 포장지에 싸인 샌드위치와 아이스 라테를 받아 들고 큰 테이블 한쪽 구석에 앉았다. 내 앞쪽으로는 한국으로 여행을 온 외국인 노년 커플이 앉아있었다. 매장의 테이블은 큰 것 두 개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사용하며 오래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빵과 커피를 간단히 즐기고 갈 수 있는 용도로 보였다.
샌드위치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빵과 약간 꾸덕하고 포슬한 계란 속의 조화가 좋았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검사를 하고 진행하고 있을 때라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빵순이인 나는 빵집을 찾았던 것이다.
처음 먹은 샌드위치와 커피가 맘에 들어서 병원 가는 날 약간의 여유 시간이 있으면 이곳에 들렀다. 어느 날은 그냥 커피만 마시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샌드위치 대신 케이크나 애플파이를 먹기도 했다. 병원에서 오랜 기다림에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작은 이벤트처럼 이곳에 들렀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도 이런저런 의심했던 병은 아니었고, 알레르기 유발 물질에 취약한 면역력이 굉장히 낮은 상태의 사람인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길게 돌아왔지만 결론적으로는 원인을 잘 모르겠다는 실망스러운 결말이었다.
병원을 옮기면서 병명이 명확하게 나와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사실 있었다. 그러나 병원을 바꿔도 내 병은 고칠 수는 없었고 그냥 내가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조심을 해도 타인에 의한 갑작스러운 향 노출에는 대비할 수가 없다는 것이 내 병의 특징이다. 올여름에는 향에 노출된 후 8시간 정도 말을 못 할 정도로 증상이 심해져서 2주, 한 달에 한 번 정도 텀으로 계속 상황을 체크했었는데 다행히 마지막 진료일로는 3개월 텀을 부여받았다. 점점 텀이 길어져서 이제 병원 갈 일이 좀 줄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병원 가는 날이 아닌, 단순히 모자이크 베이커리에 먹고 싶어서 방문할 날이 있기를 희망해 본다. 물론 병원 가는 날의 특별한 의식으로 이곳에 들리는 것도 좋지만, 기왕이면 이런 기분 전환의 용도보다는 그냥 가고 싶어서 들린다면 오랜 빵순이로서 더 빵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