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된다. 소개팅에서 상대방과 또 만날지 말지는 처음 눈이 마주치고 3초 안에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회사 첫 출근에 지각을 하면 아무리 백 번 머리를 조아려도 별로라는 평가를 극복하기 힘들다. 우연히 들어선 식당에서 사장님의 친절한 미소가 담긴 응대를 받으면 별 5개 리뷰에 절로 손가락이 움직인다.
남매의 첫 만남? 서로 악재도 그런 악재가 없었을 것이다. 혼자 모든 걸 차지하고 있던 누나는 난데없이 등장한 똥사개에게 엄마 품과 시선을 강탈당하고 말았다. 호시탐탐 기회를 타서 동생을 밀치고 꼬집다가 엄마에게 궁뎅이만 잔뜩 맞게 되었다. 동생은 태어나자마자 위협적인 눈빛을 장착한 존재와 마주하게 되었다. 엄마 젖도 못 물게 훼방을 놓고 큰 덩치로 주변을 맴돌며 괴롭혔다. 언젠가 싸워 물리치리라 비장한 각오를 했을 터였다.
첫인상의 편견을 극복하려면 그 뒤에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일단 남매 사이는 서로 노력할 필요를 못 느낀다. 최대치의 전투력을 끌어올려 무조건 상대가 굴복할 날만 기다릴 뿐이다. 가족 안에서 부모와 자식은 대체로 서열 정리가 된다. 부모는 어른이고 보호자니까 어느 정도 잘 보이려고 한다.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먹고 사는 자식으로서의 정체성에 흔들림이 없다. 그런데 옆에 있는 이 놈은 뭘까? 엄마는 누나에게 동생을 잘 챙기라고 하고, 동생에게는 누나 말을 잘 들으라고 하는데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는지 전혀 납득이 안 됐다.
남매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이 혈기 넘치는 어린 우리들에게 와닿을 리 없다. 동생이 있어서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가 치킨 먹고 싶은 날 동생은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한다. 이사 간 날 방을 정할 때나 어린이 채널을 선택할 때도 고도의 심리전을 펼쳐야 한다. 동생이 사고를 치면 누나인 나도 같이 혼나고, 학교에서 나머지공부를 하는 동생에게 한글과 음표도 가르쳐야 했다. 엄마가 콩나물 심부름이라도 시키면 동생과 나는 서로 미루다가 된통 혼나고 결국 같이 집을 나섰다.
그렇게 원수같은 녀석이 없는 것보다 나은 때도 있기는 했다. 엄마가 밤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는 날, 빈 방에 혼자가 아니라 동생과 함께였다. 주인집 꼬맹이가 얄밉게 혼자 줄줄이 비엔 나를 까먹을 때, 나와 동생은 힘을 합쳐 녀석을 골려먹고 울려 놓았다. 윗마을 아이들의 공격을 대비해 지옥훈련 놀이를 할 때도 동생은 든든한 행동대장이 되어 주었다. 귀신이 출몰하는 컴컴한 시골 외가에 맡겨졌을 때,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잠을 자야 안심이 되었다. 밤에 요강을 찾을 때는 동생이 꼭 그 앞을 지켰다.
20년 넘게 동거인으로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나 보다. 어린 날의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만큼 넉넉한 어른으로 큰 것도 참 다행이다. 무엇보다 외롭고 고단한 세상살이에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는 핏줄이 있어 감사하다. 각자 결혼해서 명절 때나 얼굴 보고, 용건이 있어야 연락하는 사이지만 우리가 든든한 동지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내일 한 번 카톡이나 보내봐야겠다. 그러면 현실 남매 동생답게 답장이 올 것이다. 왜?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