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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현실 남매

- 에필로그

by 난화

'사이좋은 남매 만들기 프로젝트'는 과연 이번 생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동생과 나는 어린 날의 과오를 뒤로 하고 끈끈한 동지애로 거듭났다. 둘 다 마흔이 넘은 데다가 부모도 곁에 안 계시니 하늘 아래 우리 둘 뿐이라는 애틋한 연결고리가 생긴 듯싶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주 만나느냐? 아니다. 연락이라도 좀 하느냐? 아니다. 명절에 선물이라도 보내느냐? 아니다. 말이 잘 통하냐?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자주 안 보고 말을 안 섞을 때 평화가 오는 현실 남매이다. 혼자서 동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찌릿찌릿한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면 하고 싶은 잔소리 오만가지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겨우 삼킨다. 한 가정의 가장인 동생을 만나면 얘가 어른인 척(?) 연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는 한다.


신은 내게 한번 더 연습 문제를 던져 주셨다. 바로 내가 딸과 아들을 낳아 남매의 엄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동생을 질시하고 구박하던 내 역할을 딸이 이어서 맡았고, 매력과 재주를 겸비한 동생 역할을 내 아들이 담당하게 되었다.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애국자니 뭐니 하고, 딸아들을 차례로 낳아 만점이니 어쩌니 하지만 치열한 가족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고양이처럼 새침하고 도도한 딸과 댕댕이처럼 까불거리는 아들은 매일 스파크를 일으키며 현실 남매의 대를 잇고 있다.


엄마가 되니까 이거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전에는 내가 피해자이고 동생이 아주 망할 놈이라 생각했고, 그런 동생을 아끼는 엄마가 참 미웠었다. 이 모든 과정을 겨우 수료하고 정신을 차린 내가 엄마가 되어 우리 애들만은 세상에서 제일 우애 좋은 아이들로 키워야지 결심해 봤자, 절대로 안 먹힌다. 아무리 둘 다 사랑한다고 외쳐봤자, 둘은 서로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가르쳐봤자,


"엄마, 미워!"


이 말만 허망하게 돌아올 뿐이다. 그래, 나도 무조건 내 편만 들어주기를 바랐었다. 엄마의 중립은 곧 배신일 뿐이다. 남매가 서로 목도리도 둘러 주고 과자 한 봉지도 사이좋게 나눠 먹는 순간이 있다. 엄마로서 가장 흐뭇한 장면이다. 그러다 분위기가 반전되며 한 놈이 소리 지르고 또 다른 놈은 울고 그러다 일르러 오면, 또 시작이구나 한다. 사실 이런 날이 365일 중에 364일이다.


나는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듯 지루하지만 당연하게 같은 말을 들려준다. 너희는 서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야, 엄마에게 가장 예쁜 딸이고 아들이야, 둘은 다른 거지 나쁜 게 아니야... 엄마도 예전에 외삼촌을 그렇게 미워했었지만, 나중에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 지금은 엄마랑 외삼촌이랑 엄청 친한 거 알지?


"몰라!!! 싫어!!!!!"


그래, 아프니까 가족이다. 우리 이씨 가문의 숙제를 너희가 이어서 받았구나. 어차피 온몸으로 부딪쳐 살아내야 한다면, 조금은 덜 후회할 수 있기를 기도할 뿐. 이 땅의 현실 남매들에게 밝은 내일이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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