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 Maker Final.
가끔 영국의 주변 한인 분들을 통해 보조교사가 되는 법을 여쭤보시는 분들도 계셨고, 가끔 인스타로 문의를 해주시는 분도 계셨다.
아는 정보는 최대한 나누고 싶었던 나는 그럴 때마다 열심히 나의 경험을 나누곤 했는데, 그러면서 돌아본 나의 별거 아닌 삶이... 그래도 하나하나 다 의미가 있었고 그 다음 step을 위해 필요한 과정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별거 아닌 삶의 여정이...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일기 쓰는 마음으로 기록이란 걸 해보고 싶었다.
그 와 함께 궁금하기도 했다.
나를 가톨릭 스쿨로 이끄셨던 그때부터 쭈욱...
그 학교안에서, 하필 나에게 가장 힘들다는 그 학년의 반을 맡기셨을 때..
'대체 나를 통해 하시고 싶으신 게 무얼까?
아님 나에게 뭘 알려주고 싶으신 것일까?'
어쩌다 보니 보조교사
처음 나의 연재의 소재목이 WAY MAKER 가 된 것에 기독교적 의미는 크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CCM song으로 Way maker (내 길을 만드시는 주)는 꽤나 유명한 곡이다. 제목만 보고 종교성향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중요치는 않았다.
시작할 때 진정한 의미는 연제 북 제목 그대로..
"어쩌다 보니 보조교사 " 의 의미가 컸다.
한국에서 지방대 공대를 나와 정말 우연찮은 기회로 L사 취직하고,
3G 모델 Enbeded SW engineer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내가 ...
어쩌다 보니 retail샵에 일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아이들 학교에서 lunch controler가 되었고
어쩌다 보니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1-2-1 SEN TA가 되었다가
이젠 영국 초등학교에서 보조교사가 되어있다.
이 과정안에서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전단계의 발판이 분명히 있었다.
영어가 부족했던 내가 retail shop에서 고객응대, 직원들 사이의 사회생활을 통해 언어와 문화차이에 크게 한번 혼이 나고 단단해진 것을 느꼈다.
처음에 크게 혼이 나고 나니 그다음은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이쯤이야... ' ' 이 정도면... 뭐..'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었다.
학교생활을 힘들어하던 둘째를 위해 시작했던 학교에서의 작은 job이.. 영국에서 육아를 하며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의 길을 보여주었고, 마침 코로나 시기와 겹쳐 자격증 준비를 하면서 다음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에이전시에서의 경험들은 과한 책임감에 중압감을 크게 느끼던 나에게, 조금은 책임감은 내려놓게 해주었고 짧은 시간 안에 무언가를 해내려는 급한 나의 성격을 조금은 느긋하게 해 주었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 그것도 어린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이, 코딩하여 프로그램 돌리면 결과가 나오는 수학같은 과정이 아님을 경험으로써 배우게 해주었고 당연히 내 맘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배우게 해 준 기회가 되었다.
또 한, 에이전시에서 일한 덕에 여러 다른 학교에서 여러 다른 선생님들을 접하면서 영국 교육 문화내에서 기대하는 보편적인 기대치가 무엇인지와 반대로 학교마다 다를 수 있는 방침들에는 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그 귀한 경험들 덕에 이 연재를 하는 동안 나는 한 학교에 소속이 되었고, 심지어 지금은 우리 아이들의 학교로 재취업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