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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Feb 09. 2024

잊을 수 없는 오진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이십 대 후반의 일이었다. 매일같이 어지러웠고 속이 안 좋았으며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증상이 연일 계속되었다. 여기저기 좋다는 병원을 수소문해 보기도 하고, 주변에서 용한 병원이라고 소개받은 곳을 찾아다녀도 봤으나 가는 곳마다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몇 달이 지난 후 증상이 더 악화되어 집에서 쓰러지는 일까지 발생했고 결국 119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실려갔다. 의사에게 증상을 말하니 의사는 먼저 뇌 CT 촬영을 해보자고 했다. 검사 후 몇 시간이 지난 후 의사는 CT 촬영 결과 사진을 들고 왔으며 내 뇌에 새끼손가락 크기만 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정밀 검사가 필요하니 바로 입원해서 추가 검사를 진행하자고 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입원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큰딸의 돌잔치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뇌 속에 뭔가 있다는 의사의 말에 아내도 그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큰딸을 등에 업고 밤새 병실을 서성이며 제발 큰 병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그날 밤 나는 병실 침대에 누워 불안과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혹시나 뇌종양은 아닌지 암흑처럼 밀려오는 공포감에 휩싸여 혼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만약, 이 젊은 나이에 죽는다면 아내는, 저 어린 딸은, 부모님은 어떻게 하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종교도 없는 내가 평소 믿지도 않던 신에게 살려달라며 간절하게 기도까지 드렸다.


뜬 눈으로 지새운 긴 밤이 지나고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나는 의료진에 이끌려 MRI 검사실로 이동했다. MRI 검사를 처음 받아보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일이겠지만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 윙윙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꼼짝달싹하지도 못한 채 누워있어야 하는 일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십여 분이라는 짧은 검사 시간이었지만 1년도 더 된 것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검사가 끝난 후 병실로 돌아와 송장처럼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부모님도, 아내도, 딸도, 그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롯이 MRI 검사 결과가 아무 일 없기를 간절하게 바랐을 뿐이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검사 결과 사진을 손에 쥔 의사가 허겁지겁 병실로 찾아왔다.


“환자분, 정말 신기한 일인데 CT 검사 때 보였던 것이 MRI 검사에서는 전혀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환자분 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만 퇴원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기쁨과 안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생님, 정말이에요? 저 정말 멀쩡해요?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하느님, 부처님, 고맙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답고 고귀하게 보였고, 뇌가 멀쩡하다고 말하는 의사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을 겪으면서 꼭 종교를 가져야겠다고, 신을 섬기며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까지도 난 무신론자다.) 나는 가족과 함께 그 길로 퇴원을 했다. 잠시도 그 병원, 그 병실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이후에도 날 괴롭혀오던 증상은 계속되었으며 또 다른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위해 분주히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용한 의사가 있다는 병원을 추천받게 되었고 난 바로 그 의사를 찾아갔다. 


증상과 함께 그동안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의사와 상담을 하고 그가 권하는 검사들을 차례대로 받았다. 여러 병원을 전전긍긍한 지 몇 년 만에 결국 병의 원인이 십이지장 궤양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병을 찾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는지, 아니면 지금까지 돌팔이 의사만 만나왔던 것인지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졌다. 이후 일 년여간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먹고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다니며 몸을 추슬렀다. 


그렇게 조금씩 몸은 제자리를 찾아갔다. 세월이 꽤나 흘렀지만 지금도 이놈의 위장에 탈이 나면 그때의 트라우마가 찾아오곤 한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 내게 CT 검사를 한 의사는 오진을 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공포스럽고 끔찍하기만 하다. 살면서 이런 일을 몇 번이나 겪을까? 당시 나는 MRI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세상의 끝에서 절망과 공포, 분노를 느껴야만 했고,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믿지도 않는 신에게 살려달라고 간절히 애원해야만 했다.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은 경험이다.


가끔씩 살면서 힘들거나 어려운 일에 직면하게 되면 그때의 일을 떠올린다. 죽음을 눈앞에 둔 적도 있었는데 이까짓 거 하나 해결하지 못하겠냐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십 대 후반에 겪었던 이 오진 사건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내게 오진을 내렸던 의사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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