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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Feb 13. 2024

넌 취미가 뭐니?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가끔 주변 사람들이 당신은 취미가 뭐냐며 물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내겐 고민이 필요한 질문이었다. 독서? 영화 보기? 음악 감상? 이런 질문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워서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거나 다른 주제로 전환했던 적도 있었다.


과거를 회상해 보면 나도 취미를 갖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본 것 같다. 어느 날에는 갑자기 책에 푹 빠져 일주일에 두세 번씩 대형 서점을 찾아 새로 나온 책들을 살펴보며 몇 권의 책을 골라 바닥에 쭈그려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독서삼매경에 빠진 적도 있다. 간혹 몇 권씩 집에 사들고 왔지만, 결국 그 책들은 책장에서 긴 잠을 자며 먼지로 뒤덮이는 신세가 되었다. 


또 다른 어느 날에는 산악자전거가 화두가 되어 거액을 들여 MTB 자전거와 보호 장비들을 구입해 매주 주말마다 한강을 돌며 자전거를 즐겼던 적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취미도 사라져 MTB 자전거는 결국 관상을 위한 소품으로 전락하였고 이후 친구의 아들에게 선물로 보내지게 되었다. 


또 언젠가는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볼링 경기에 푹 빠져들어 집 근처 볼링장을 자주 다녔다. 다행히도 그때는 장비를 사는 일은 없었다. 


또 한 번은 겨울 스포츠에 흥미를 느끼며 적금을 깨고 강남에 있는 유명한 스키 판매점에서 스노보드 장비 세트 샀다. 눈 내리는 겨울이면 스키장으로 향했지만, 초보자 코스를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지금 이 장비들은 창고에서 녹이 슬어가고 있다.


이랬던 내가 또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할 낌새를 보일 때면 아내는 매서운 눈빛으로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벌일 거냐며 핀잔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내가 벌여온 일들에 대한 아내의 핀잔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이전에 시도한 일들 중 어느 하나라도 꾸준히 해왔다면 아내로부터 핀잔을 듣지는 않았을 테고 남들로부터 취미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제대로 된 취미 하나 갖지 못한 나 자신에게 실망이 크다.


퇴직을 하고 나니 취미 생활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져만 간다. 물론 아내는 또다시 걱정을 하겠지만 주변에 좋아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앞으로의 시간을 활력 있고 즐겁게 보내기 위해 나만의 취미 생활을 찾는 일에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대신 돈 안 들이는 취미를 찾아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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