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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Feb 21. 2024

점쟁이 할머니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직장인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나 역시 회사를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었다. 특히, 부진한 사업 성과로 인해 소속된 팀이 해체될 때면 이 같은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회사에서의 불안한 입지, 새로운 조직에서의 눈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한꺼번에 밀려와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런 내 모습이 많이 불안했는지 아내가 용하다고 소개받은 점집을 찾아갔었다고 한다. 


“남편 때문에 왔구먼? 지금 남편 엉덩이가 많이 들썩거리고 있지?”


점쟁이 할머니는 아내를 보자마자 마치 줄곧 곁에서 지켜봐 왔던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고 했다. 평소 무속신앙을 믿지 않는 나 또한 아내의 이 같은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정말 용한 사람인가 보네? 보자마자 그런 소리를 해?”


“어. 용하다고 주위에 소문이 많이 난 집 이래. 그 할머니가 용하게 잘 맞추신대.”


아내도 많이 놀랍고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아내의 말에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점쟁이 할머니가 한 말들이 궁금해졌다.

 

“그래? 또 뭐라고 하셨어?”


아내는 점쟁이 할머니와 나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 말씀이 자기는 지금 엉덩이를 들썩거리면 많이 힘들어지니까 그대로 엉덩이 붙이고 있으라는 거야. 그러면 아무 걱정 없을 거라고.”


당시 점쟁이 할머니의 말씀대로 몇 번이나 들썩였던 엉덩이를 붙이기 위해 꾹 참고 또 참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흘러간 세월이 이십 년에 가까워졌다. 몇 군데의 회사를 옮겨 다녔던 청년 시절에 비하면 오래 머문 셈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의 회사 생활은 점쟁이 할머니 덕인 것 같다. 


그리고 점쟁이 할머니는 자리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한마디 말을 덧붙이셨다고 했다.


“댁네 남편은 사주를 보니 평생 일만 하다 죽을상이야. 그리고 주위에 여자도 없으니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잘 살기나 해.”


나는 아내의 말을 듣고 박장대소를 했다.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하하하. 난 그런 사람이니까 평생 아무 걱정하지 말고 살아.”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평생 일만 하다 죽을 거라는 점쟁이 할머니의 마지막 점괘는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나는 퇴직을 했고 일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아니면 엉덩이를 들썩이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들썩였기 때문일까? 


아내가 전해준 할머니의 말들을 곰곰이 되뇌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게 된다. 점쟁이 할머니는 아직 살아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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