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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Feb 23. 2024

오뚝이 선배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한때 내 조직장이었던 선배와 나는 종종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추억 속의 대폿집에서 내 퇴직을 아쉬워하며 늦었지만 조촐한 송별회를 했다. 비록 송별회라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자려였지만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마음에 웃고 즐기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선배와의 첫 만남은 실적 부진으로 인해 내가 속해 있던 팀이 해체를 앞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선배는 우리 팀의 사업 모형을 벤치마킹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 중이었다. 팀이 해체 위기에 처하면서 팀원들의 타 부서 이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무렵, 선배는 자신이 준비 중인 새로운 사업에 내가 동참해 주길 제안했다.


“엉과장,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나랑 함께 미래를 꿈꿔보지 않을래?”


당시 팀이 해체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한 상황에 놓여있었던 나에게는 선배의 제안이 솔깃하게 다가왔다. 새로 준비하고 있다는 사업 이야기를 듣고 며칠 동안 밤낮으로 고민한 끝에 결국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는 햇수로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 사업 모델에 대한 수차례의 수정과 보완을 거듭했다. 그리고 임원들과 대표이사, 이사회 보고 등을 거쳐 최종 투자 승인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계획한 신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선배는 새롭게 구성된 팀에서 팀장을 맡았으며 점차 팀원들을 하나둘씩 늘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업을 시작한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회사는 우리 사업의 낮은 성과와 재무적 손실을 이유로 십여 명에 달하는 동료들을 다른 팀으로 방출시키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들 중에는 팀장인 선배도 포함되었다. 저성과에 대한 문책성 인사였던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고 놀라울 수밖에 없는 조치였다. 신규 사업을 시작한 지 아직 일 년도 안되었는데...


그 사건 이후, 남은 팀원들과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새로운 서비스를 시장에 알리는 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력을 다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우리 서비스에 대한 진정성과 효과성을 알아준 고객사가 하나둘씩 늘어나며 계약을 체결하기 시작했다. 이후 점차 많은 고객사를 확보하면서 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평균 20% 이상의 꾸준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조금만 더 빨리 좋은 성과를 창출했다면 팀장이었던 선배와 동료들이 팀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는다.


선배는 새로 배치된 팀에서도 한동안 힘든 시련의 시기를 보냈다. 비록 팀원으로 좌천되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생존 능력이 강했던 선배이기에 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상사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다시 한번 팀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선배는 회사의 전반적인 시스템 인프라를 혁신을 준비하는 중책을 맡으며 임원 후보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의 집념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근간이었고 쉬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은 성장이 밑거름이었다.


그랬던 그가 또다시 시련을 겪기 시작한 것은 회사 인프라 혁신에 대한 준비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여기저기 무수히 말들은 많았지만 새로운 일이 진행될 때 늘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또다시 타 부서로 좌천되었다.


이제는 선배도 정년퇴직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그는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고 한다. 십 년이 넘도록 지켜본 선배는 매번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꿈을 이뤄보기도 전에 자리에서 밀려나야 했지만 또다시 오뚝이처럼 우뚝 서고자 노력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회사 생활에 최선을 다하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선배의 열정에 후배로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아직은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훗날 멋진 모습으로 선배 앞에 당당하게 서고 싶은 마음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선배의 또 다른 꿈이 꼭 이루어져 자신을 위한 멋진 날개를 펼치길 기대해 본다.


선배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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