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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독생자는 왜 죽어야만 했는가?

by 케이시르

분명 장자의 죽음으로 인해 과부가 된 인류를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해 둘째 아들이자 하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은 둘째 아들이 말씀에 의해 성령으로 태어났고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이 그분이었으며 곧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보호자 되시는 둘째 아들마저도 죽임을 당하면 인류는 또 과부가 된 상황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아주 난감한 상황이 또 되어 버린 것이다. 성경을 읽는 오래된 전승에 따라 죄와 벌에 대한 원리로 성경을 읽어왔고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죽어야 했다는 말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아야 한다.


먼저 간단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과연 신은 인류에 일어나는 수많은 죄들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내가 만약 신이라면 사실 관심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만약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 땅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 설명이 되질 않기 때문에 이미 심판되고 없어졌어도 일백 번은 없어졌을 것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받아들인 결론은 신은 인간의 선과 악, 그리고 죄와 벌에 대한 1차원적인 분별이 아닌 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와 모르고 관심 없는 자로 구분하는 것이 가장 이성적인 분별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생각이 실제로 그러한지 성경을 찾아보며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이유에 대해 찾아보려고 한다.


이사야 43:25
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분명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인류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대체 무슨 뜻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가랴 3: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그리고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두 말씀의 뜻을 함께 보면 하나님은 자신을 위하여 이 땅의 죄악을 하루 만에 제거하시고 그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신은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하실 수 없는 것이 단 한 가지가 있다면 약속에 대한 번복을 하실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민수기 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이사야 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하나님의 뜻과 원리로만 바라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나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셔야만 했다는 것은 현상적인 사건 일 뿐이지 본질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본질은 여기에도 말씀에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 6: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 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하지 아니하니


성경에는 대체 누구를 통해서 말하면 들을 것이고 어떻게 하면 들리겠냐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니 즐겨 듣지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만큼 신이 사람에게 가장 답답해하는 한 가지가 이것이다. 대체 누구에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하면 듣겠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이 땅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한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너희들의 죄를 하루 만에 없애 준다면 그때는 듣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어떤가요? 죄가 없고 흠도 없는 나에게 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욕으로 여긴다고 말하고 있다.


이사야 6:9-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사야 1:17-18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저자가 본 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씀이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붉을지라도 눈과 양처럼 이미 희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이것을 알지 못한 채 믿음이 없는 자는 "털어서 먼지 하나 안나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말하며

자신의 죄를 스스로 합리화하기도 하고 믿음이 있는 자들은 매일 교회에 나가 자신이 저지른 죄를 자백하여 용서를 구해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나의 죄를 고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가장 답답해하고 있던 문제에 해결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이제 말씀 듣기를 좋게 여기느냐?"라는 물음에 답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죽으셔야 만 했던 이유는 도무지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눈과 귀가 열리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죽음이었다. 과부가 되어 고통받고 있던 인류에 신랑 되어 주기 위해 보호자 되신 하나님이 도무지 알지 못하는 아내에게 해 준 한마디 "혹시 내가 죽으면 그때는 내가 네 보호자 됨을 알아주겠니?" 알려주시기 위해 한 행동이 죽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말에도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 데 산사람 소원 못 들어주랴?"는 말이 있지만. 사실상 죽었기 때문에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산 사람에 소원은 들리지가 않는다. 오히려 죽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말이 마음에 박혀 있다고 생각한다.


에스겔 36: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과부가 된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둘째이자 마지막 아들은 절대 죽으면 안 되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죽어야만 했던 이유는 내 말을 들어달라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단 한 가지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요한복음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한복음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는 어렵고 비유로 설명해 주셨지만 제자들에게는 쉽고 직설적으로 가르쳐 주셨는데 예수 그리스드의 죽음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야만 우리의 눈과 귀가 열리고 많은 사람에게 말씀이 들리고 보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혜사 다시 말해 성령이 하는 일은 과부 된 인류를 보호하는 일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보호 하심 또한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미를 찾기 위해 말씀을 열어보았고 들어보았지만 성경 말씀은 도무지 무슨 뜻이고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하여 다시 말씀을 닫아버린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그 말씀을 해석해 주는 역할을 하며 그것은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만 찾아오시는 성령의 일이며 보호 하심을 말한다.


마태복음 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요한복음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이 죽으신 것을 보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한 이들이 있었고 베드로에게 찾아가 물으신 한마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던 것은 예수님이 죽기 전에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가 통곡하며 울었던 이유도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고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2:61-62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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