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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절필동 Dec 26. 2023

네 숨만큼만 해라

도(度)와 도(道)

같은 책이 여럿 있습니다.

같으면서 서로 다릅니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입니다.


먼저 읽었던 책은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입니다. 

도농 직거래, ‘한살림’을 처음 여셨던 장일순 선생님의 유고(遺稿) 같은 책입니다. 

마지막까지 옆에서 말씀을 받고 나누었던 이 아무개님께서 엮으신 것입니다. 


노자만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장일순 선생님과 이 아무개님의 깊은 통찰들을 엿듣는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도올 선생님의 『노자가 옳았다』, 『노자와 21세기 1,2,3』입니다. 혼자 읽어볼 수 있을까 싶어서 제목에 끌려, 최경열의 『독학자를 위한 노자 읽기』도 구매했습니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도를 도라고 말한다면, 도가 아니다.” 


그 유명한 도덕경 첫 구절입니다. 

처음부터 무엇을 알고 모르고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0가0 비상0' 도(道)자 대신에 0안에 넣고 싶은 단어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노자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물’을 잘 보면 노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나는 안에서, 

당신은 밖에서, 

‘물’처럼 지내는 시간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흘려보냅니다.


물은 높으면 내려갑니다. 

막아서면 멈추어서 돌아갑니다. 

뒷물을 기다려 모이면 넘어섭니다. 

좁아지면 급하게 빨리 가고, 

넓어지면 여유로워 느릿하게 쉬어갑니다.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 도(度)에 맞게 사는 것일 겁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도(道) 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네 숨만큼만 해라.”    

 

제주 할망 해녀가 이제 처음으로 물질하는 젊은 해녀에게 한 말입니다.


해녀가 물질하려면 숨을 참고 바닷속에 들어갑니다. 물속에 한 번 들어가면 좀 더 큰 해산물을 따고 싶다지요. 물 밖으로 올라오면 중간에 조류에 떠밀려 다시 그 자리로 내려가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 번 물속에 들어가면 그때 큰 해산물을 따서 올라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고 합니다. 


우리 뇌는 산소를 많이 필요로 합니다. 

물속에 들어가서 숨을 참으면 뇌는 그만큼 산소를 빼앗기게 되고 그게 좀 더 길어지게 되면 점착 의식을 잃어간다고 합니다.


평생 물질을 해 온 할망 해녀는 어떤 물질의 기술보다도 가장 소중한 것을 전수해 주었다고 봅니다. 


‘네 숨만큼’은 물질에서만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됩니다.   


  

숨은 생명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날숨과 들숨의 반복을 아무 의식도 없이 합니다.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그 어떤 의지와 의식도 없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네 숨만큼”이라는 것입니다. 




큰 감정의 굴곡에서 크게 ‘한숨’을 쉬는 때들이 있습니다. 

숨의 규칙을 읽어버린 때입니다. 

‘한숨’이 있기 전에 갑자기 큰일을 당하면 숨이 빨라집니다. 

때론 아예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격한 감정 때문입니다. 

숨의 규칙이 깨진 때입니다. 이럴 때 ‘한숨’이 나옵니다. 


우리 몸은 자연스러웠던 숨의 규칙성을 벗어나, 막히거나 급해질 때, 다시 ‘한숨’을 쉬게 합니다. 격했던 숨을 다시 고르게 분배하나 봅니다. 그렇게 해서 격한 감정을 진정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도 아니면 ‘숨을 크게 쉬어’ 보는 게 처방이 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숨만큼’이라는 것입니다. 

‘만큼’의 철학과 삶의 지혜를 깨닫기란 쉽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만큼’을 먼저 알기가 어렵습니다. 


내게 주어진 ‘만큼’이란, 한계만을 의미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만큼’을 넘어서지 말라는 지혜 이전에, ‘만큼’까지는 해야 하는 자신의 도리(道理)조차도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들이 많이 있어서입니다. 


‘정도’(程度)를 벗어나지 않는 ‘만큼’에 대한 인지(認知)는, 자신의 ‘정도’(正度)를 지키려는 ‘만큼’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의지(意志)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가족은 힘이지 부담이 아니라고 합니다.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에는 힘의 무게가 실려 부담이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나와 당신이 미안함과 걱정의 짐과 무게들을 줄이고 비워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꽃이 빗물을 ‘만큼’만 받아내고 쪼르르 비워내듯이 말입니다. 


멀리 가는 사람은 눈썹도 밀고 간다지요. 새는 날기 위해 제 몸의 뼈까지 비운다고 합니다.     

 

동반(同伴)의 첫 번째 조건은 도착점이 멀어야 한답니다. 

그래야 함께 가는 그 도정(道程)이 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당신의 도반(道伴)이 되겠다고 서약한 이래, 처음으로 ‘함께’ 하지 못하는 지금을 잠시 쉬어가는 여정(旅程)이라고 생각합니다. 


‘걷다 보면 길이 된다’는 이철수 님의 판화 그림이 떠오릅니다. 길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겠지요. 


올라갈 때 ‘걸림돌’이 내려올 땐 ‘디딤돌’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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