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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절필동 Jan 02. 2024

휴정(休靜)

당신에게 주는 새 이름

당신을 새로 부를 이름 하나를 지었습니다.

당신을 휴정(休靜)이라 부르려고 합니다.


지금의 당신에게 쉴 휴(休) 자(字)를 주고 싶은 것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는 것이 ‘쉬는 것’이라는 뜻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쉼이 시끄러울 리 없겠지만, 쉼조차 고요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고요할 정(靜) 자(字)를 가져왔습니다.

문제는 정(靜) 자를 왜 ‘고요하다’라고 했는지를 아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순간의 간편 검색이 가능하지 않은 곳이 이곳입니다. 

혼자 풀어야 하는 숙제가 정답인지를 확인할 길도 없습니다. 


한자가 뜻글자라 해도, 소리를 따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모두를 하나하나 떼어내 파자(破字)한다 해도 그것이 맞는 것인지를 모릅니다. 


나무랄 사람을 곁에 두지 않은 혼자라서 생각이 자유롭습니다.


‘푸르름’(靑)과 ‘다툼’(爭)을 한데 모으면 ‘고요하다’(靜)는 뜻을 모르니 생각이 길어졌습니다.


‘푸른’ 것의 대표는 풀(草)입니다. 

초록 풀을 푸른/파란 청이라 했으니, 건널목에서 초록불에 건너라고도 하고 파란불을 기다리라고도 합니다.


‘푸르름’(靑)은, 붉은 돌(丹) 사이에서 피어나는(生) 것이 푸른 새싹이라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다툼’(爭)은 손톱(爪)만 보아도 싸움을 연상할 듯싶습니다. 


그래도 ‘푸른 것’(靑)이 ‘다투’(爭)면 ‘고요하다’는 것이 무엇일지가 쉽지 않습니다. 


나는 푸른 풀들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하나를 풀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풀들입니다. 집단입니다.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처럼, 셀 수도 없는 작은 풀들은 저마다 키재기들을 하는 다툼들이 숨어있어 보입니다. 워낙 작은 것들의 집단적 키재기 다툼이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낮게 깔린 작은 풀들은 혼자 있지도 않아서 바람에 흔들리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풀들의 다툼은 소리도 없어 조용하다 못해 ‘고요할’ 지경입니다.     




쉰다는 것은 잠시 일을 손에서 놓고, 몸은 나무에 기대는 것입니다. 

일은 소리를 갖습니다. 일이 없으면 소리도 없습니다. 무음(無音)은 쉼이 됩니다. 

싸움은 시끄러운 소음(騷音)입니다. 

쉼은 다툼의 소리를 없애는 소음(消音)입니다. 

모든 다툼(爭)을 푸르디푸르게(靑) 보면 고요함(靜)입니다. 

쉼(休)은 고요(靜)의 다른 이름입니다.  

   

당신이 휴정(休靜)이고 싶습니다.         

 


깜짝 놀라 일어났습니다.

양동이 가득 찬 물을 뒤집어썼습니다. 고문실에서 실신하면 들이붓던 장면을 영화에서 많이 봤던 게 남아있었나 봅니다.


머리 위로 녹슨 창살이 박힌 작은 창문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쇠 방충망으로 덮어둡니다. 그 사이를 뚫고 빗물이 분사기에서 내뿜듯 간지럽게 얼굴 위로 내려와 앉았습니다.


나를 찾아오는 이는 누구나 손님입니다. 

빗방울도 손님입니다. 

예상치 못한 방문은 반가움입니다. 

나가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찾아오는 손님은 귀빈입니다. 

여기서 비는 가장 만나기 힘든 손님입니다. 비가 오면 운동장에 나가지 못합니다. 온몸으로 만날 수 없는 이가 비입니다. 

작은 물방울조차 자신을 부수어 비좁은 녹슨 쇠 방충망을 뚫고 내게로 찾아온 귀하디 귀한 손님입니다.



아랍인들의 환대를 기억합니다.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방문하지 않는다’는 그네들의 믿음은 일상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찾아온 빗방울은 천사입니다.


오른발등에 작은 통증이 있습니다. 손이 닿지 않아 누워서 왼쪽 발로 문질러 봅니다. 

공을 찼습니다. 아니, 그사이 공은 빗나가고 쇠기둥 골대를 찼습니다. 발아래 싱크대 다리를 찼습니다.

꿈이었습니다. 옆 사람을 걷어차지 않은 게 다행이었습니다.




장자(壯者)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지요. 

꿈에서 깨고 나서 자신이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가 된 꿈을 꾼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고 하는 저 유명한 호접몽(胡蝶夢)이 떠올랐습니다.


장자의 ‘나비꿈’이 주는 깨달음은 세월이 길고 길어서 많은 현자(賢者)들에게 그와 비슷한 깨침의 글들을 많이 남겼나 봅니다. 

나는 그 모든 글을 다 알지 못합니다. 책 속에 서산대사의 글이 있어 옮깁니다.


主人夢說客(주인몽설객)-주인은 손님에게 꿈을 말하고

客夢說主人(객몽설주인)-손님도 주인에게 꿈을 말하나

今說二夢客(금설이몽객)-지금 꿈 이야기를 하는 두 나그네여

亦是夢中人(역시몽중인)-역시 꿈속에 있는 사람이거늘   




서산대사께서 길을 가다 어느 주막에 들렀답니다. 

주인과 나그네가 서로 각자의 꿈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듣고, 그 자리에서 지었다고 하는 ‘삼몽사’(三夢詞)입니다. 

깊은 뜻이야 내가 풀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풀이해 주는 듯합니다. 

주인의 꿈 하나, 손님의 꿈 하나, 두 개의 꿈이 아니라, 세 개의 꿈(三夢)이라고 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꿈이었다고 말하는 현실도 ‘꿈’이라고 헤아렸나 봅니다. 

꿈과 현실은 불이(不二)이고 불이(不異)라는 불가의 가르침을 전하려 했나 봅니다. 


밖에서는 꿈이 현실이기를 바라며 로또 가게 앞에 줄을 서는 사람이 있고, 현실이 꿈이기를 바라는 안에 있는/안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그렇고 당신이 그렇습니다. 

그조차 꿈일 줄 꿈에도 모를 것 같습니다. 



서산대사의 법명(法名)이 휴정(休靜)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묘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휴정(休靜)이 입적(入寂) 하기 전, 묘향산 원적암에 머물 때였답니다. 묘향산을 서산(西山)이라 했나 봅니다. 

하루는 제자들을 모아 마지막 설법(說法)을 마친 뒤, 자신의 영정을 꺼내 뒷면에 시구 하나를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전거시아 팔십년후아시거)

80년 전에는 그대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그대로구나     


영정을 살펴 그때의 나이를 가늠해 보려는 호기심은 내색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일도 말도 없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많은 시간은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입니다. 

한 줄 읽은 게 하루 내내 생각하게도 합니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은 감기질 않습니다. 

멀리 있어 잘 보이지 않을 때, 눈은 스스로 작아집니다. 

생각과 마음의 눈은 반개(半開) 여야 하나 봅니다. 



갈 길이 먼 것을 아는 나그네의 걸음이 빠르지 않은 것을 압니다.     


해남 대흥사에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을 모셨다고 합니다. 정조가 서산대사의 공적을 찬(讚)한 친필도 있다고 합니다. 


추사(秋史)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길에 대흥사를 들렸답니다. 당시 주지가 다산(茶山)의 강진 유배 시절 그와 가장 가까이 있던 초의선사(草衣禪師)였다네요. 추사와 초의의 우정은 유명합니다. 

추사는 대흥사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을 봅니다. 당대 최고의 서체(書體)를 대표했던 원교(圓嶠) 이광사가 쓴 것입니다. ‘조선의 글씨를 다 망쳐놨다’라며, 추사는 초의에게 당장 원교의 현판을 떼어내 불태워 버리고, 자신이 새로 써 줄 것을 내걸라고 했다고 합니다. 


추사는 8년의 제주도 위리안치(圍籬安置)의 유배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해남 대흥사에 다시 들릅니다. 초의에게 이전에 자신이 써 주었던 현판을 내리고 다시 원교의 글씨를 걸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사료(史料)보다 오래 남는 구전(口傳)은 마음에 남는/길 이야깃거리일 것입니다.


추사의 글씨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내가, 원교의 글씨를 옆에 두고 그 둘을 비교해 평할 자리에 있지 못합니다. 다만 서로 다른 서체의 모습을 새로운 마음으로 보고 싶어 졌습니다. 


출소 후 가보고 싶은 곳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땅끝 해남을 가는 길에 강진 다산(茶山)의 초당을 들르고, 두륜산 대흥사에 가보고 싶습니다. 대흥사에서는 초의선사가 중건하고 입적할 때까지 머물렀던 일지암(一枝庵)에 꼭 들려보고 싶습니다. '나뭇가지 하나면 새 한 마리 앉기에 충분하다'는 일지(一枝)를 다시 보고 싶습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들렀던 곳입니다. 


다시 가는 걸음이 다를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추사의 유배 전과 유배 후가 달랐던 듯, 나의 수감 전과 출소 후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에 더해, 당신, 휴정(休靜)과 함께 휴정(休靜)을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매일 얼마를 더 머물지를 염려하기보다는, 

나가서 어디로 떠날지를 그려보며 지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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