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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감옥에서 4. 여행
08화
길이 끝난 곳에서
by
만절필동
Jan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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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란
원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은 것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를 아는 이들은 나에게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지금은 내가 듣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고(事故)가 아니라, 사건(事件)에 대해 생각합니다.
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뒤늦은 후회를 만듭니다.
사건은 돌이킬 변혁의 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사고가 아니라, 사건으로 보려면 반성(反省)이 ‘뒤돌아’(反) 보는 것이 아니라, ‘뒤집어’(反) 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뒤돌아보는 것은 현실을 자해하는 부정이기 쉽습니다.
뒤집어 보는 것은 현실을 딛고 내일을 바라보려는 것입니다.
‘컵에 물이 반밖에 없네’와 ‘아직 반이나 있다’고 보는 차이입니다.
뒤돌아보는 것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대표적인 것이 히브리성서 롯의 부인의 이야기와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 같습니다.
롯의 부인은 멸망의 상징 소돔과 고모라를 뒤돌아보고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염분 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인 네게브 광야 사해(死海)와 연관됐을 겁니다.
오르페우스(Orpheus)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명한 시인 겸 음악가로, 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라는 아름다운 님프와 사랑에 빠졌고, 둘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에우리디케는 뱀에 물려 목숨을 잃고 맙니다.
오르페우스는 저승으로 내려가 그녀를 되찾기로 합니다.
오르페우스는 최고의 리라(Lyra, 하프 모양의 고대 그리스 현악기) 연주가였습니다.
자신의 연주로 하데스(Hades, 저승의 신)를 감동시켜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도록 허락받습니다.
단, 지상으로 돌아가는 동안 오르페우스가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지상으로 거의 다 왔을 때, 아내가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봅니다.
그 순간 에우리디케는 저승으로 다시 사라지고, 오르페우스는 영원히 그녀를 잃고 맙니다.
에우리디케를 잃은 후 오르페우스는 세상에 흥미를 잃고 리라만 연주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디오니소스의 신성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여자들에게 살해당합니다.
그의 머리와 리라는 강으로 떠내려갔고, 리라는 결국 하늘의 별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거문고자리’라고 불리는 게 ‘리라 별자리’입니다.
한여름 큰 삼각형을 그리는 리라 별자리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바로 ‘베가’ 별입니다.
하나는 아내가 뒤돌아보고, 다른 하나는 남편이 돌아다 본 것입니다.
성별을 나누어 본 것으로 히브리 사고와 헬라 사고를 구분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롯의 부인도 그렇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아내가 얼마나 절실했으면 돌아본 오르페우스를 누가 탓할 수 있을까요.
두 이야기 모두 신의 명령을 어겼다는 점만 남아 있습니다.
왜, 신은 인간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을까요?
신의 입을 빌려 인간이 전한 것입니다.
‘미련을 두지 말아요’ 노랫말도 있지요.
롯의 부인은 두고 온 집에 대한 미련이 있었을 겁니다.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 자신이 아니라, 자신에게 꼭 있어야 할 아내에 대한 자기 불안이었을 겁니다.
불교에서는 집착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집착은 버려야 할 것 같지만, 내 삶을 둘러보면 놓칠 수 없는 게 한 둘이 아닙니다.
강을 건너려면 뗏목이 필요합니다.
뗏목이 귀중하다 해서 강(피안)을 건넌 후 짊어지고 가지는 않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장자(莊子)도 같은 말을 했지요.
“그물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니, 물고기를 잡으면 그물을 잊고, 덫은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니, 토끼를 잡으면 덫을 잊는다.”
장자가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그물과 덫이 아닙니다.
말(言)입니다.
“言者所以在意(언자소이재의)이니 得意而忘言(득의이망언)이라. 말은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니, 뜻을 깨달으면 말을 잊는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심을 덧붙입니다.
“吾安得夫 忘言之人而與 之言哉(오안득부 망언지인이여 여지언재?), 내가 어찌 그 '말을 잊은 사람'을 찾아 그와 함께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을 잊은 이와 함께 말을 하고 싶다는 장자의 마음을 이해하긴 어렵지만, 말을 잊은 당신과 말을 하고 싶은 내 마음은 같아 보입니다.
제자가 묻습니다.
“유혹을 피할 방법이 무엇입니까?
스승이 답합니다.
”유혹을 피할 방법이 없다.
유혹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일이 없다.
자신이 유혹을 좇는 것이다.
그러니 피할 길이 없다.“
모든 욕망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끄덕입니다.
욕망이 반드시 앞에 있는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뒤에도 있습니다.
뒤돌아(反) 보는 마음이지요.
그 마음을 뒤집어(反)야 하는 마음을 찾습니다.
돌아보는 마음은 확인 때문입니다.
불안을 지우는 안심을 위한 것입니다.
사다리를 오르면 오르수록 불안합니다.
안심은 두 발이 대지에 서 있을 때입니다.
바닥은 추락의 여지가 없습니다.
살아가는 게 길을 걷는다고 해서, 인생길이라고 하지요.
누구나 자신의 길을 걷습니다.
나름의 목적지와 방향을 갖고 있습니다.
빠르고 쉽고 넓은 길을 찾지만, 때론 갈림길에서 주춤하고, 가보지 않은 길 앞에서 서성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
길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이 다하는 날 길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길을 혼자 걷는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길은 셀 수 없는 사람들과 알 수 없는 세월이 다지고 다져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걷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나의 목적지가 누군가에겐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길은 시작과 끝이 없는 여정이고 도정입니다.
걸으면 길이 시작되고, 걸음을 멈추면 길은 끝이 납니다.
그래서 길이 도(道)입니다.
그러니,
걷다 보면 알게 됩니다.
그게 길(道)이라는 것을,
걷게 되면 알게 됩니다.
그게 길(道)이 된다는 것을!
도(道)가 수행이라면, 시작과 끝이 있는 게 아닐 겁니다.
깨달음의 여정이라서 도정(道程)입니다.
길(道)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길(道)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길(道)을 좇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옥은 자유로운 행보가 막힌 곳입니다.
여기서는 수심(修心)으로 수행(修行) 길을 따르지 않을 다른 길이 없습니다.
길이 끝나는 데에서부터 여행이 시작된다고 했지요.
밖에서 걸어왔던 길이 끝났습니다.
안으로 들어와서
나는 이제 새로운 여행길에 올라섰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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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길
감옥
Brunch Book
당신에게-감옥에서 4. 여행
06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07
바람 모서리
08
길이 끝난 곳에서
09
유용(有用)과 무용(無用)
10
감옥에서의 여행
당신에게-감옥에서 4. 여행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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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남을 가르쳤습니다. 감옥에 천 일을 있었습니다. 나를 가르쳤습니다. 만 번의 밑줄을 동서양 고전과 인문학 책에 그었습니다. 아내에게 보낸 천 통의 편지를 다시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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