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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절필동 Dec 22. 2023

한 나무에도 같은 나뭇잎 두 장이 없다

‘진리’(眞理)가 아니라 ‘일리’(一理)입니다

매일 느끼는 건 다름입니다.


먹는 것도 다릅니다. 

자는 것도 다릅니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다릅니다. 


안과 밖이 서로 다른 것들을 세다가 끝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다 안과 밖이 서로를 다르게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모두가 다른 것들입니다. 

‘안’에서도 ‘밖’이 있고, ‘밖’에서도 ‘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아는 일은 모두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줍니다.     




‘한 나무에도 같은 나뭇잎 두 장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두가 다르다는 것은 그 무엇도 영원히 ‘하나’임을 고집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진리’(眞理)가 아니라 ‘일리’(一理)입니다. 


‘단 하나’(the One)의 진리(眞理)만을 ‘고집’하는 것이 승리가 아닙니다. 

‘하나’(a/an)의 일리(一理)를 ‘인정’할 때, 승패(勝敗)를 지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인정’은 ‘단 하나’(the One)로의 수긍(首肯)이 아니라, 

‘하나’(a/an)의 ‘다름’을 수용(受容)하는 일입니다.


가는 것을 붙잡지 않고, 오는 것을 마중 나가지 않으려는 마음을 준비합니다. 

일출(日出)을 보며 일몰(日沒)을 당겨 걱정하지 않듯이, 오늘의 일몰을 보며 내일의 일출을 기대하며 밤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찌 보면 ‘다른’ 것은 ‘둘’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둘’이 아니라면, 서로가 ‘다른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불이’(不二)가 ‘불이’(不異)입니다. 


당신은 ‘너’이면서, 나 또한 당신에게 ‘너’입니다. 


‘안’에 있는 ‘나’의 힘듦과, ‘밖’에 있는 당신의 아픔이 다르지 않을 것을 알게 합니다. 

‘밖’에서 ‘안’을 걱정하는 것과, ‘안’에서 ‘밖’을 염려하는 것이 다르지 않겠지요. 

‘밖’에 있는 당신이 조금이라도 편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안’에 있는 ‘나’를 다스리는 나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옥바라지’는 ‘안’에 있는 내가 할 일입니다.     



책을 구매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내가 해야 하는 ‘옥바라지’ 일 하나가 당신의 ‘옥바라지’ 하나를 늘려 놓습니다. 

당신에게 책을 부탁드리는 일입니다. 

나의 부탁 하나가 당신의 힘든 마음의 무게 하나를 줄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가에 꽂힌 책들을 보면서 읽을 책을 고를 수 없다는 게 여기에서 작은 불편입니다. 

읽고 있는 책 참고문헌에서, 신문 광고나 기사 중에서, 출판사 자사 목록들에서 책 제목들만 봅니다. 구매 전에 책에 대한 정보를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우리 한시 삼백수』를 하루에 하나씩 읽고 있습니다. 

‘삼백일’을 채울 수 있을지, 반복해서 읽게 될지를 모르는 미결수(未決囚)입니다.

책의 여백에 나의 감상을 적습니다. 


오늘은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다고 하는 문신 이명한(李明漢)의 시(詩), 「書堂別席醉書嶺南伯李子時扇面(서당별석취서영남백이자시선면)」입니다. 

제목만 보면 무슨 말인지 어렵지요. 

풀어보면, ‘서당의 이별 자리에서 술에 취해 영남백 이자시의 부채에 써주다’입니다. 

옛사람들의 정취를 흉내 내기가 어렵습니다.     


落花流絮點人衣(낙화류서점인의) 

지는 꽃 버들가지 내 옷에 점을 찍고

三月江村燕子飛(삼월강촌연자비) 

삼월이라 강마을엔 제비가 나는구나

惆悵孤舟南岸別(추창고주남안별) 

슬프다 외론 배는 남쪽 언덕 헤어지곤

不堪空帶夕陽歸(불감공대석양귀) 

혼자 석양 이끌고 차마 어이 돌아오리    

  

아래는 여백에 적어놓은 나의 감상입니다. 마지막 절구(絶句) 때문입니다.


엊그제 당신이 다녀가고 면회실에서 사동 방으로 돌아오던 그 먼 길이 겹쳐졌습니다.     



흘러가는 강물은 돌아올 줄 모르는데

어찌하여 내 님은 강물에 배 띄우나


저 멀리 막아서는 산자락에 다다르면

강물은 돌아가고 님 자취 사라지고


해조차 님 따라 산등성이 넘어가면

그제서야 차마 등 돌려 돌아오는 길


그림자만 홀로 남아 님 따라 강물 따라

흘러 흘러 길어져만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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