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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절필동 Dec 21. 2023

탁한 물이 고여있어도 연꽃 하나만 있으면 연못입니다

사람(人)은 사이(間)입니다


미결수 사동에서 하는 일은 없습니다.


종일 앉아 있습니다.

하루에 30분 ‘운동’ 시간이 되면 그제야 모두 일어납니다.

미결수 사동에 딸린 운동장은 섬마을 초등학교 분교 운동장보다 작습니다.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

서 있는 사람,

팔 굽혀 펴기 하는 사람,

턱걸이하는 사람,

짝을 지어 이야기하는 사람,

혼자 있는 사람...


나만 혼자 세상 밖으로 나온 줄 알았는데, 여기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결수가 되면 각 사동에서나 공장에 나가 일을 한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징역(懲役)이라고 하나 봅니다.

기결수 사동에는 축구장보다 큰 운동장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미결수 누구라도 기결수가 되고 싶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은 많아도 지금 당장 가고 싶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오래 앉아 있는 일에 익숙해서 당신의 걱정이 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일 ‘앉아 있어야’하는 형벌을 피해,

종일 ‘앉아 있어도 되는’ 형편에 있다는 자위(自慰)가 내 억지일지도 모릅니다.    

 

종일 앉아서 ‘여유’(餘裕)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수인(囚人)이 할 말이 아닌 것을 모르지 않아서, 당신에게 전하는 지금도 머뭇거립니다.


현대인의 삶의 특징 중 하나가 ‘여유’가 없다고 합니다. ‘여유’를 누릴 ‘여유’도 없다는 모습입니다.

‘남아서(餘) 넉넉하다(裕)’는 글자의 뜻을 생각합니다.


내가 ‘여유’를 생각하는 것은 지금의 내 형편이 ‘여유로워서’가 아닙니다.

속 옷까지 반납하고 남은 게 없는 빈 몸으로 새로이 어떤 ‘남아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하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찾은 것은, ‘여유란 하나의 틈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여유’는 ‘틈’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듯 보입니다.

비교는 언제나 변합니다.

아주 작은 ‘틈’도 ‘남아서 넉넉한’ 여유를 내어 줄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틈’은 공간과 시간에 자리합니다.

공간에 ‘틈’이 있으면 두 개의 물건을 서로 기대어 세울 수 있습니다.


시간에 ‘틈’이 있으면 쉴 수가 있습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잠시도 쉴 ‘틈’이 없이 살아갑니다.


감옥은 나의 지난 시간을 멈추게 했습니다.

멈춘 시간은 숨이 막힐 듯했습니다.


이제는 멈춘 시간이 도리어 숨 쉴 ‘틈’을 만들어 주는 듯합니다.

숨을 쉬려고 바둥대는지도 모릅니다.




찰나(刹那)는 시간의 멈춤입니다.

숨을 쉴 수 있는 탄생의 자리가 ‘틈’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려면 그만큼의 간격과 거리의 ‘틈’이 있어야 합니다. 끼어들 '사이'가 필요합니다.


‘틈’은 ‘사이’입니다.


그래서 모든 관계는 ‘사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부부 사이’도 그렇습니다.

서로에게 들어갈 ‘틈’을 내어 줄 수 있어야 ‘사이’가 좋습니다.


사람(人)은 사이(間)입니다.     


각박한 세상은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감옥은 세상보다 좁습니다.

방 하나가 거실이고 침실이고 식당입니다. 화장실도 좁습니다.

통문조차 둘이 옆으로 서서 지나갈 수 없습니다.


감옥엔 그 누구도 쉽게 들어오거나 나갈 수 있는 ‘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감옥 사전에는 ‘여유’라는 단어가 없어 보입니다.

세상보다 감옥에선 몸도 숨도 쉴 ‘틈’이 더 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자기 징역이다.’


여기 와서 자주 들었던 말입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누구에게도 한 치 ‘틈’조차 내어 줄 ‘여유’ 없는 곳이 감옥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래서,


‘숨’을 쉬기 위해서라도 나는 ‘틈’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내가 아니라 감옥이 나에게 ‘틈’을 내어 주었습니다.     


종일 앉아서 공간과 시간의 ‘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실낱같은 희망을 말할 때, 그 어떤 작은 ‘틈’이라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말을 멈추니 생각이 들어 올 ‘틈’이 생겼습니다.

늦은 밤까지 연락도 없던 내가 하루도 쉬지 않고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틈’이 생겼습니다.


당신은 수인(囚人)이 된 나에게 새로운 ‘사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틈’과 나와의 ‘사이’에 피어 있습니다.     


탁한 물이 고여있어도 연꽃 하나만 있으면 연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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