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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절필동 Dec 19. 2023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 새로운 무늬를 남긴다

조장(助長)과 사바

오늘 당신을 만났습니다.


하루 뒤 소풍날을 기다리던 아이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어느 옷을 입을까를 고를 이유가 없었지요.


오늘은 얼굴에 비누칠을 두 번 더 했습니다.

여기는 유리 거울이 없습니다.


당신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걱정보다는, 어떻게 보여야 할까를 결정하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살쪄 보여야 할까,

살 빠져 보이는 게 좋을까.

이래야 좋을까 저래야 좋을까.


무엇보다도 웃는 모습을 보일까 말까를 결정짓지 못하고 당신을 만나러 나갔습니다.




당신은 웃지는 않았지만,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나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짧은 면회 시간이라지만 나에겐 길었습니다.

시간이 말을 자르지 못하게 하려고 바라다보는 것으로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과 밖이 투명창 사이로 내통하는 만남이 유쾌할 순 없겠지만, 굴절되지 않는 당신의 눈빛은 그간의 이야기들을 다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예전엔 당신과 헤어질 때,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귀에 갖다 대며 전화하겠다는 손짓을 했습니다.

오늘은 헤어지면서 손으로 쓰는 손짓을 했지요.


당신은 미소 지으며 나의 편지를 기다린다고 끄덕였습니다.

   



논에 심은 모들이 빨리 자라게 하려고 조금씩 위로 뽑아 놓았더니, 결국 모들이 다 죽었다고 하지요.

중국 고사에서 이를 ‘조장’(助長)이라고 합니다.

그 반대되는 말이 산스크리트어로 ‘사바’라고 한다네요.


‘참고 견뎌 나간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이생이 ‘참고 견뎌 나가야 하는 세상’이라 ‘사바세계’라 했나 봅니다.


나는 변호사에게 ‘조장’을 기댔던 것 같고, 판결은 ‘사바’였나 봅니다.


‘조장’은 놓을 수 없는 불안한 희망입니다.

‘참고 견뎌’ 나가야 하는 것은 포기와 결단입니다.


‘조장’은 미결(未決)이고, ‘사바’는 기결(旣決)입니다.     


상처는 아물 수는 있지만 지워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높이 들었던 축배의 잔마저 한순간 놓쳐버린 날에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깨어진 잔의 조각들을 주워 모아 하나씩 붙여놓을 수는 있지만, 흠 없는 이전의 깨끗한 잔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미 쓸모없게 되어버린 깨진 잔 조각들을 쓸어 내다 버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산산이 깨진 잔 조각들로 그 어디 제대로 발을 디딜 수도 없었던 것을 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당신만 두고 왔습니다.     




찬 바닥에 누우면 곳곳이 따끔거립니다. 깨진 파편들이 박혀 있나 봅니다.


뒤척이다 일어났습니다.

깨진 잔 조각들이 모두 맞춰져 다시 잔이 된 것을 보았습니다.


꿈은 현실의 환영(幻影) 같습니다.

잔에는 깨진 조각들을 붙인 데마다 금줄들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금들은 정형되지 않은 무늬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깨어진 조각들이 금으로 이어진 ‘금잔’은 빛나는 ‘금잔’(金盞)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적어두었습니다.

오늘 당신을 만나러 가면서 주머니 안에 들고 갔지만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 새로운 무늬를 남긴다.’


상처를 지우려는 ‘조장’은 더 큰 상처를 만들지도 모릅니다.


‘참고 견뎌내’ 아문 상처의 자국은 새로운 무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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