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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절필동 Dec 19. 2023

말로 하려니 어느새 말을 잊었네

당신은 나의 편지가 약이 된다 했습니다

여기 와서 가장 변한 것은 말이 없어졌습니다.


할 말이 없으니 그렇습니다.

법정 최후진술에서 ‘할 말이 없다’ 던 말의 책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반성과 변명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말없이 산다는 것은 말 많은 세상을 등지려는 도주의 속내를 감추려는 것이었는 지도 모릅니다.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산 기운은 노을에 아름답고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나는 새들은 짝지어 돌아가누나

此間有眞意(차간유진의) 

저 가운데 참뜻이 있을진대

欲辯已忘言(욕변이망언) 

말로 하려니 어느새 말을 잊었네     


도연명(陶淵明)의 시(詩)를 읽다가 마지막 시구(‘말로 하려니 어느새 말을 잊었네’)에서 그만 울컥했습니다.


‘말이 없어진’ 주어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었습니다. 


‘할 말이 없던’ 나에게 먼저 ‘말을 잊었’ 던 건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시인은 ‘참’(眞)마저도 ‘잊었’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참음’(忍)으로 ‘말을 잊었’나 봅니다.  

   

자연의 황홀함도 그 순간의 시간만이 있을 겁니다. ‘지금’은 언제나 멈추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저 산 너머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당신이 ‘잊었’ 던 건, 급한 ‘말’이 아니라, ‘지금’을 보게 하려는 느림이었습니다.   



  

철창 밖 노란 둥근달에는 수직으로 선들이 그어져 있습니다.



나는 ‘지금’, 흐르는 물에 비친 달을 봅니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습니다.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지도 않고, 물에 젖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지금’ 내 무릎 앞에 흔들리며 있습니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떠난 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을 때, 인편으로 가족들의 편지가 왔습니다. 큰아들 학연(學淵)이 말을 사서 말 타고 아버지를 찾아뵙겠다는 편지였습니다. 


다음 달에 운전면허를 따서 차를 몰고 면회를 오겠다던 아들 편지가 겹쳐졌습니다. 


다산의 부인 홍 씨가 시집올 때 가져온 붉은 치마를 보내왔습니다. 다산은 그 치마를 잘라서 두 아들을 위한 책보도 만들고, 하나 남은 딸 시집 선물로 그림과 시를 적어 보내주었다지요. 


훗날, 18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 결혼 60주년 기념 시를 지으면서 그 옛날 아내의 붉은 치마 이야기를 적었다고 합니다. 

그 시가 그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습니다. 회혼일에 유명을 달리하지요.


나는 훗날 당신과 아이들에게 무엇을 전해 줄 수 있을지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계속 읽는 책은 다산의 글들입니다. 

그의 유배(流配)와 나의 수감(收監)을 견주려는 게 아닌 것을 당신이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산을 떠올리는 것은 큰 나무 그늘에 들어가려는 나의 얄팍함일지도 모릅니다. 

남의 큰 아픔을 읽는 날은 진통제를 투약받는 날이 되기도 합니다. 


당신은 나의 편지가 약이 된다 했습니다. 

하루도 조제하는 일을 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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