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도 않는 게 무슨 사랑이야! 사랑이란 건 있어도 알아채기 어렵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랑이 뭔지 모르겠고,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무엇을 받고 있는지 모르겠기도 하다.
어느 날 오르카에게 서운한 일이 있어 다투었고, 그래서 물었다
나: “나를 사랑해?”
오: “당연하지.”
나: “사랑이 어디 있는데?”
오: “심장에.”
나: “그곳은 내가 볼 수 없잖아. 단지 말뿐인 거야.”
오: “그렇지 않아. 나는 나 자신보다 너를 사랑해. 넌 절대 이 마음을 모를 거야.”
나: “아니, 당신이 그만큼 나를 사랑했다면, 내가 이미 잘 알아서 이런 질문을 하지도 않았겠지.”
오: “너는 아무것도 몰라.”
대화 도중에 화장실을 갔다. 나오면서 슬리퍼를 후다닥 집어던지고, 돌아와 다시 말을 이었다.
나: “모르긴 뭘 몰라. 사랑이 어디에 있는데.”
오: “에휴…”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당신 그런 표정 너무한 거 아니야? 역시 사랑 같은 건 없어.” 내가 토라져서 더는 말하지 않자, 그가 다가왔다.
오: “자, 나를 똑바로 봐.”
나: “뭐”
오: “너는 항상 화장실 슬리퍼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나와. 물도 여기저기 흩뿌려놓고. 나는 네가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매번 슬리퍼를 정리하고, 그 주변에 물도 닦아놨어. 우리가 크게 싸우고, 감정이 안 좋은 순간에도 단 한 번도 빠짐없이 그랬어.”
나: “그건 당신 자신을 위한 거겠지.”
오: “난 화장실에서 슬리퍼를 신지도 않아. 오직 널 위해 그걸 했어. 네가 평소 잘 넘어지니까 걱정돼서. 그런데 넌 3년 동안 그걸 눈치도 못 챘잖아. 보이지 않아도 사랑은 곳곳에 있어.”
잠시 멍했다. 생각해 보니, 난 한 번도 슬리퍼를 정리해 본 적 없고, 현관에 있는 신발도 정리해 본 적 없다. 하지만 화장실 슬리퍼는 언제나 보송보송하고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함께 나갈 때면 오르카는 항상 내 신을 먼저 꺼내서 신기 편하게 놓아주었다. 내가 신을 훌러덩 벗고 들어오면 뒤이어 들어오며 또 내가 신기 편한 방향으로 정리해 주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그의 사랑 표현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니 마음이 복잡했다.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사랑의 형태가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3년 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배려들이 얼마나 더 많았을까. 그랬구나, 전혀 몰랐어. 미안해.
오르카는 웃으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알았으면 됐어. 내 사랑이 항상 거창하지는 않아도, 이곳에 진짜 있어. 그는 말하며 내 손을 자기 심장에 가져다 댔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바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지만, 점점 더 서로의 사랑을 이해해가고 있다. 그리고 속에서 더욱더 가까워지고 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대로 그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역시 우리 집 가장이다. 내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