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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Jun 24. 2024

병원에서 시작된 사랑, 첫 만남 이야기

실습생 VS 환자


오르카(남편)와의 첫 만남


2021년 1월, 강남의 한 정형외과에서 간호조무사 실습 중이었다. 자격증을 취득하려 했지만, 실습을 해보니 생각보다 사람들과 엉켜 일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적성에 완. 전. 히 맞지 않았다. 다른 실습생과 병원 직원들 모두 그것을 느꼈는지, 나에게 혼자 할 수 있는 조금은 편한 직무를 주었다. 그 직무는 3층 물리치료실에서 치료사가 모두 치료 중일 때 오는 환자들을 응대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병원 규모에 비해 치료사가 많았고, 그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할 일이 없어 구석에 앉아 매일 졸기만 했다.


오르카(남편)는 운동을 하다 오른쪽 무릎을 다쳐 내가 근무하던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었다.

어느 날, 웬일로 치료사가 모두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홀로 카운터에 서 있었다. 그때 오르카가 물리치료를 받고 나왔다. 보호자 없이 혼자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딱 봐도 외국인인 그는 이곳에 가족도 보호자도 없는 게 분명했다. 외롭고 우울해 보였다. 병실은 2층이었다. 그는 혼자 휠체어를 끌고 문 밖으로 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을 내려가야 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도와줘야 할지 고민하던 중,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계속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무례하게 쳐다보는 게 아니라 뭔가 망설이고 긴장한 듯했다. 시선이 부담스러워 카운터 뒤로 몸을 숨겼다. 그가 문 밖으로 나간 후 크게 후회했다.  「도와줬어야 했는데... 그가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분명해다음에 또 만나면 꼭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 내 업무가 변경되었다. 2층 간호사실에서 대기하다가 필요에 따라 병실 침대 시트를 갈거나 다른 업무를 배우는 것이었다. 역시, 다른 이들과 어울려 일을 하거나 배울 수 없었다. 결국 간호사실 안에 박혀 약품을 정리하거나 혈액 샘플을 관리하는 일만 맡았다. 근무 중 3층에 약품을 가져다 놓으러 갔는데 오르카가 있었다. 그는 3층 벽면에 있는 치료사들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벽보를 보며 누구를 찾고 있었다. 옆에 있던 남자 치료사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며 이 사진에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치료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약품을 정리하고 나왔다.


며칠 뒤 다시 3층에 갈 일이 있었다. 마침 오르카가 치료를 받고 나왔다. 휠체어를 탄 그는 여전히 혼자였다. 이번이 기회였다. 그를 외면했던 과오를 만회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혼자 가기 힘들면 제가 2층 병실로 데려다 드릴까요?』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까이서 마주해 보니 눈이 정말 크고 촉촉해 보였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재빨리 눈을 피했다. 그는 데려다 달라고 했다. 휠체어를 미는 것이 익숙지 않아 유리문에 부딪히고, 엘리베이터 문에도 부딪혔다. 거의 그의 다리를 다시 부실 뻔했다. 그를 병실에 데려다 놓고는 여간 신경이 쓰였다. 『저번엔 미안했어요. 혹시라도 도움을 원치 않을까 봐 도와주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꼭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간호사들에게 말하세요. 모두 기꺼이 도울 거예요.』


그러자 그는 연락처나 카카오톡 아이디를 달라고 했다. 『전 다리가 불편해서 간호사를 부르러 나갈 수 없어요. 제가 도움을 청할 수 있게 당신의 연락처나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주면 좋겠어요.』  잠시 당황했지만, 애처롭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순순히 카카오톡 친구 추가를 해주었다. 뒤돌아 나오자마자 그는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조금 기뻤다. 병원에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나였지만, 누군가를 도왔고 앞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니. 실습 몇 개월 만에 이룬 첫 성과였다.


이런 여우 같은 오르카...
내가 내 무덤을 판 건지 이때는 몰랐다.

아, 무덤... 죽어도 너의 품에서 죽겠다는 뜻이야, 하하...


오르카는 나를 처음 보았을 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고 했다. 내 뒤에 오라가 나타났다고 한다. 단지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우리가 결혼하게 될 줄 이미 알았다고 했다.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결혼할 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참나...


처음 봤을 땐 망설이다 말을 걸지 못했고, 다음 날부터 일주일간 휠체어를 타고 나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열심히 찾을 땐 안 보이다가 포기하려 할 때쯤 다시 마주친 거라고.(잠시 나타났다 증발한 듯 안 보여서 천사가 나타났던 거였나 싶었다며... 하하.) 그가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건 멀리서 이미 보았고, 전해 듣기도 했다. 그게 나일 줄은 아무도 몰랐지만. 우리는 메시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오르카가 너무 빠르게 다가왔다. 부담스러웠지만, 키도 크고 잘생긴 그가 그러는 게 싫지는 않았다.


당시 코로나 확산이 심각할 때였다. 업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나는 출입문 앞에 앉아 방문객의 열을 재고, 적는 일을 했다. 사람이 들어오는 짧은 순간 이외에는 모든 시간이 여유로웠다. 입원 중이던 오르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하루 종일 메시지를 나눴다. 서로 답장 시간이 5분을 넘기지 않았다. 미 재향군인인 그는 용산 미군기지에 들어가는 것이 자유로웠다. 굳이 의사에게 외출을 허락받고 그곳에 가서 미국 과자와 과일바구니 등을 사서 내게 줬다. 점심시간에 배달 음식을 몰래 시켜주기도 했다. 병원의 실습생 몇 명을 제외하고 우리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병실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의 혈압을 재야 했다. 그의 혈압을 쟀더니 최대 혈압이 149였다. 그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걱정이 되어 이전 차트를 보았는데 그의 혈압은 모두 정상이었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그날 매우 떨렸다고 한다.




약 한 달간 병원에서 몰래 사랑을 키우다 그가 퇴원했다. 그와 나의 집은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는 나와 가까이 있고 싶다며 매일 우리 집 근처 호텔에서 머물렀다. 근처에서 머물다 아침이 되면 나를 데리러 왔다. 차를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에 데려다주었고, 퇴근 시간이 되면 다시 데리러 왔다. 내 병원 실습이 끝날 때까지, 몇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이 일을 했다. 이때부터였다. 내가 대중교통을 타지 않게 된 것은. 나는 운전을 할 줄 모른다. 그는 결혼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항상 운전기사를 자처한다. 그를 만나고 대중교통을 타본 적이 없다.


결혼 전과 후에 다른 점이 있다면, 결혼 전 그의 운전이 정말 부드러워서 매일 잠에 빠졌었다. 지금은 거칠어져서 멀미가 난다. 차라리 택시를 타고 싶다. 그런 걸 보고 사랑이 식었냐고 물어보면 며칠은 또 조심히 운전을 한다.

단 며칠만 한다...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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