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비안그레이 Jun 28. 2024

요리를 못해 다른 걸 내어주다!

일단 이건 사기결혼이었어!


『난 요리도, 집안일도, 일도 못해.』

오르카의 프러포즈를 받고 결혼을 약속한 후, 뒤늦게 걱정이 밀려왔다. 난 정말 집안일도, 사회생활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의 혼인이 무산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싶어 직접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뭐가 문제야? 난 15세부터 사회생활을 했고, 오랫동안 혼자 살았어. 군대에도 있었기 때문에 정리도 잘해. 내가 다 할 거야. 넌 아무것도 안 해도, 못 해도 돼. 직장에 다닐 필요도 없어. 네가 일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절대, 맹세코 네게 일을 시키지 않을 거야. 다만 우리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돌봐줘. 물론 그것도 내가 할 테지만, 아이에겐 엄마가 더 필요할 거야.』 

오르카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결혼을 하고선 더욱더 당황스러웠는데,


『거짓말쟁이!!! 사기꾼!!! 사기결혼이야 이거!!! 물러!!!』다 뻥이었다. 나는 솔직하기라도 했지…


우리 집은 넓지도 않고, 곳곳에 휴지통이 있다. 오르카는 그 몇 걸음도 걷기 싫어서 휴지나 아기 기저귀를 휙휙 집어던진다. 『골인~! 봤어? 내가 어릴 때 농구선수 하려고 했어. 우리 삼촌들도 농구선수야.』  내가 째려보면,

 『워워, 인종차별할 생각은 하지 마. 흑인이라고 다 농구 잘하는 건 아냐.』 내가 입을 떼려 하면 또,

 『에.. 음 맞아 아무래도 영향이 있긴 한듯해. 조던도 흑인이잖아. 하하』 뭐 이런 소리를 한다. 어이가 없어서.


『거품도 먹을래?』 그가 설거지를 하고 나면 거품이 남아서 미끌미끌했고, 침대에서 과자를 거꾸로 털어 입에 넣고도 침대를 털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빨래를 하고 나면 개는 게 아니라 세탁기에 그대로 두고, 아침마다 세탁기에서 양말을 꺼내 신었다. 하여튼 나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다행히 시키는 건 곧잘 하는데 냉장고 청소를 하라고 하면 ‘냉동고’ 청소는 안 하고, 냉장고만 청소했다. 하하… 이제는 몇 번 투닥투닥하고 나서 대부분 잘한다. 그래도 정말 내 손에 물이 묻은 적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설거지를 거의 해본 적 없기 때문에. 식사는 물론이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그가 모든 젖병을 씻고, 소독했다.


난 정말 요리를 못한다. 게다가 요리 하나에 하루 종일 걸리기 때문에 오르카가 기다리다 배를 곯는다. 그래서 요리를 잘 안 하지만, 가끔 할 때는 손이 커서 볶음밥 하나를 해도 큰 대접에 넘치게 준다. 오르카는 항상 그걸 남김없이 먹는다. 내가 먹어도 맛이 없는 음식을 맛있다고 우기며 끝까지 다 먹는다. 결국 요리는 너무 힘들어서 간편식을 조리하거나 배달음식을 많이 먹는다. 이럼에도 오르카는 한 번도 불만을 제기한 적 없이 나를 지지한다. 오히려 내가 요리를 하려고 하면 만류하며 쉬라고 하면서 주문을 하자고…….. 쓰다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정말 나를 위한 것이었나? 하여튼.


6월 25일

오르카는 부대찌개를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6·25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부대찌개는 어렵지 않겠다 싶어 내가 해주겠다고 했다.(그가 만류했지만) 이것저것 넣고 라면까지 넣어 완성했다. 찌개를 상에 올리자 그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정말 잘했어, 최고의 부대야.』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지만, 그는 다시 확실하게 『부대!』 했다. 한국어라 헷갈렸나 보다. 『부대가 아니라 부대찌개라고 해야지.』알려주었다.


『아니야. 국물이 하나도 없잖아. 뭘 만들었지만 국물이 없어서 찌개는 아니고, 그냥 ‘부대’야.』

결국 물을 더 부어 다시 끓여주었다. 부들부들



이전 04화 3년 간 몰랐던 남편의 비밀:그의 은밀한 사랑 표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