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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Jul 15. 2024

그 교회는 어린 악마들의 소굴이었다

19. 악마야 내 몸에 손대지 마


내가 다닌 교회의 2층, 성인들이 예배드리는 본당 뒤쪽에는 유아실이 있었다. 예배 시간에 아기들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으로, 방음시설이 탁월했다.


예배당은 연령대에 따라 다른 층에 위치해 있었다. 예배 시간도 초등부는 9시, 중고등부는 10시, 성인은 11시로 차이가 있었다.


부모님과 예배 시간이 달랐던 나는 항상 먼저 교회에 도착했다. 그럼 예배당으로 향하는 대신 유아실에 숨어 있었다. 유아실은 천국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내게 포근한 잠자리가 되어주었고, 소음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겨울이면 따뜻한 보일러 덕분에 더 아늑했다. 거기까지였다. 현실은 언제나 눈앞에 있었다. 천국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에게 지옥은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상태 그 자체였다.


교회에는 행태가 불량한 두 남자 중학생이 있었다. 그들은 항상 함께 다녔다. 나는 주일학교 교사들 앞에서 그들에게 담배를 피우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몇 번이나 냄새가 났기 때문에 진위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들은 부인했다. 난 그럴 리 없다며 큰소리쳤다.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담배 냄새가 났던 다른 학생들의 이름까지 열거했다. 악의는 없었다.

이 사건과 더불어 나는 여러 가지로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결국 미움을 잔뜩 사게 되었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나를 때리거나 욕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인생을 되돌아보니 그들의 말과 행동이 악의로 가득 차 있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내 발등에 침을 뱉고 실수라며 사과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면, 어서 알아챘어야 했다. 그것이 한두 명이 아니었을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상호 간에 피해를 입힌 이 시점에 그들과 나의 차이점은 악의의 유무뿐이었겠지만.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어도, 일요일은 매주 어김없이 돌아왔다. 『엄마 찾게 해달라고 기도 열심히 해.』 아버지는 나를 먼저 교회에 보냈다.

나는 곧장 유아실로 향했다. 몸을 웅크리고 잠에 들기 직전이었다. 무중력 같던 안온함이 찢어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행태가 불량하던 그 두 명의 중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맞지? 맨날 여기 있다니까?』 나를 두고 내기라도 한 듯 흥미롭게 대화했다. 다시 누워 잠을 청하려 했다. 그들은 나를 정자세로 눕혀 양팔을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단지 어색하게 웃으며 무엇을 하냐고만 물어댔다.

『다 알면서 모르는 척이야. 너도 좋아서 웃는 거 아니야?』 그들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어쩌면 장난을 치려는 줄만 알았다.


그들은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여전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몰랐다. 간지러워서 웃음이 터지면서도 왠지 모를 불쾌감에 괴로웠다. 무슨 상황인지는 이해할 수 없어도 본능적으로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빠져나가고 싶었다.

『나, 아빠가 오라고 했어. 가야 해.』 미소를 지으며 변명했다. 웃으려고 웃은 건 아니었다.

 『너 매주 예배 빠지고 여기 있었다고 이를까? 네 부모가 널 가만히 둘까?』그들은 잔인하게 비웃었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후로 그들을 피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유아실 대신 화장실에 숨어 있곤 했지만 이마저도 발각되어 유아실로 끌려갔다. 나는 지옥에 사는 악마, 그들은 교회 문턱을 밟고 선 악마들이었다. 그들의 영역을 피해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욱더 철저히 도망 다녔지만, 몇 번 더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 이 정도로 끝난 일은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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