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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화산꽃처럼

by 윤서린

<그리다, 글이다> 브런치북 연재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미술학원에 다녀보지 못한 나의 어린 시절과 성인이 되어 시작한 취미 미술에 대한 설렘, 기대, 좌절, 성장을 기록하고 싶어서 시작한 연재였다.


그동안 내가 그림을 시작한 시간순으로 기록하고 싶었지만 과거 자료를 찾고 이야기를 씀에 있어서 여력이 부족해 계속 다음 연재를 미루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시간 흐름상이 아닌 그때그때 내가 올릴 수 있는 그림과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려고 한다.


밀린 숙제가 많아서 아예 숙제를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는 아이처럼.

그렇게 그림 이야기를 미뤄뒀었는데 오늘부터 조금씩 올리려 한다.


오늘은 화실 수업에 늦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한참을 늦게 화실 벗의 전화를 받고 무거운 마음을 일으켜 화실로 갔다.


마음이 복잡할 때 물감놀이를 하며 색과 붓칠에 집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울퉁불퉁하던 마음이 조금은 다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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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릴지 정하지 않고 바탕을 겹겹이 칠한다.

따로 스케치는 하지 않고 붓이 가는 대로 그린다.

아크릴 물감이 마르기 전에 다른 색을 섞어 올리고 섞고 올리고를 반복한다.


캔버스 표면이 거친 붓자국으로 채워질 때까지...

마음의 응어리가 풀릴 때까지 물감을 섞어 올린다.


요즘은 연습장처럼 작은 캔버스 하나를 가지고 몇 시간 동안 논다.

꾸덕해진 물감과 거친 붓자국, 흐드러진 꽃잎을 그린다.


화실에서 여러 그림들과 함께 작업 중인 내 그림이 놓여있으면 다른 수강생들이 단박에 내 그림이라고 알아본다.


이렇게 규칙 없고 근본 없고 제멋대로 그리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게 내 그림이다.

나는 내 그림을 좋아한다.


오늘은 뭔가 강렬한 색에 끌려서 온갖 화려한 색은 다 넣어서 칠했다.

화산이 폭발하듯 꽃술이 터져나간다.


봄비에 벚꽃 잎이 떨어지는 오후에 나는 <붉은 화산꽃>이 된다.

내 안의 내가 "상상의 꽃"이 되어 터져 나가고 흘러내린다.

끈적한 눈물이 마른다.


배경 속에 이렇게 많은 색이 섞여있다.


누구는 알 수도 있고,

누구는 모를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우리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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