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내면소통>,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아침에 새벽독서글을 쓰고 외출했어야 하는데 집 떠난 지 16시간이 넘어 이제야 책상에 앉는다.
오늘은 <내면소통>중에서 [자기 동기력: 세상과의 소통능력]에 대해 읽고 쓴다.
자기 동기력이란?
"자신이 하는 세상일에 대해 열정을 발휘하는 능력이다. (...) 어떤 것을 디자인하고 그러한 아이디어를 현실 세계에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힘이 자기 동기력이다.". (95면)
나는 워낙 생각이 많으니 가끔 내가 낸 아이디어를 기술적으로 누가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생각만 하다가 흐지부지한 것들. 내게 그걸 구현해 낼 능력이 없으니까 누군가 그걸 해줬으면 했다.
그 이유가 자기 동기력이 부족한 거여서였다니...
"세상일은 "나"와 "너"를 연결하는 교량이기도 하다. (...)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돌을 나르는 것이 아니라 성을 쌓는 사람이 발전하고 생각한다. 스스로 하는 일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하는 일에서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그 일에 몰입할 수 있다.". (95면)
"세상이 나를 결정짓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내가 능동적으로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95면)
"나를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키는 일이야말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96면)
주말에는 시를 좀 읽어보려 한다.
어려워서 잘 안 읽게 되는 시집을 펼쳐드노라면 이 작가가 누구인지부터 궁금해진다.
왠지 그 사람을 잘 알고 있어야 진짜 시의 단어들이 읽힌달까...
오늘은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를 읽는다.
처음부터 읽는 게 아니라 휘리릭 전법으로 마음에 드는 제목부터 읽어본다.
[문상]
: 박준
한밤
울면서
우사 밖으로 나온 소들은
이곳에 묻혔습니다
냉이는 꽃 피면 끝이라고
서둘러 캐는 이곳 사람들도
여기만큼은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냉이꽃이 소복을 입은 듯
희고
머지않아 자운영들이 와서
향을 피울 것입니다
길가에 피어나 제 몫보다 훨씬 더 커버려 휘어진 흰 냉이 꽃을 보고 있노라면 박준의 시가 한 겹 더 눈앞에 펼쳐질 것 같다.
어쩌면 작가가 말한 소복을 입은 듯한 냉이꽃은 우리 마음속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도 맞닿아있을지도 모는다.
병들어 매장된 소들의 무덤에도 봄이면 늘 그렇듯 냉이가 자라난다.
하지만 소가 키워낸 냉이를 캐 먹으러 오는 이는 없다.
소도 냉이도 처지가 비슷하다.
상주가 되기를 자처한 듯 냉이는 흰 소복을 갖춰 입고 추모한다.
머지않아 소들의 먹이였던 자운영들은 소들이 없음에 자신의 목숨을 보존한 안도감으로 조문을 올 것이다.
누군가는 떠나 흔적이 사라지고 누군가는 매년 그렇듯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온다.
삶이 순환에 인간이 개입하면 조금 슬픈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
내 마음속 저장된 냉이꽃의 마음은 박준 시인이 간직한 뜻과는 조금 다르다.
언젠가 그 간직된 마음이 [냉이꽃] 시로 태어날 것이다.
그러면 그때 얼른 브런치스토리 연재북 <마음 밭, 떨어진 시의 씨앗>에 담아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