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독 83일차]'의도된 달라짐', 가슴을 써레질하는것

김주환 <내면소통>, 김창완 <이제야 보이네>

by 윤서린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 중 [신경가소성: 마음근력 훈련이 가져오는 변화] 부분을 읽고 간단히 정리한다.


"신경가소성"은 신경세포 간의 연결망 변화다.

"가소성"이란? 인간의 뇌가 말랑한 찰흙처럼 변형 가능하다는 말이다.


'습관'의 본질 : 새로운 자극이 뇌에 반복해서 들어오면 그러한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서 신경세포 간의 연결구조에 생물학적 변화가 생기는 것, 습관의 본질, 훈련의 효과. (139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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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는 때가 있다'라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시냅스로 이루어진 신경세포 간의 연결망은 평생 계속 변화한다. 따라서 '배움에는 때가 있다'라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훈련할 수 있고 새로운 습관을 들일 수 있다."

(140면)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배우는 게 가능한 것은 이론상으로 알겠는데 실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내 주변에 드물다.

어르신들은 대부분의 정보를 '시청'하며 받아들인다.

"읽는다"는 개념은 노안과 집중력 부족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생활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나 또한 그렇다.

악기를 배우고 싶은데 멈칫한다.

이 나이에 배워서 언제...라는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배우며 좀 더 나아지는, 되어보고 싶은 내가 되는 삶을 꿈꾼다.


"마음근력이 강화된다는 것은 사람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마음근력이 강화되면 더 강한 자기 조절력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이나 행동을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더 잘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조절력이 향상되면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나 윤리성을 지니게 되고,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게 되며, 일을 할 때 끈기와 집중력을 발휘하게 되고, 감정조절력과 충동통제력도 높아지게 된다. 더 강하고 더 올바르며 더 유능한 사람, 한마디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142면)


"마음근력을 강화하는 것은 '의도된 달라짐'이다. 즉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 자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 중요한 것은 '훈련'이고 '실행'이다." (143면)


내가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감정조절력과 충동통제력이 부족한 나란 사람이 변화하고 싶어서다.

"의도된 달라짐"을 통해 나의 근본을 재정비해보고 싶다.


김창완 에세이 <이제야 보이네>


전설적인 가족밴드"산울림"의 보컬, 기타, 작곡가, 연기와 라디오 DJ인 김창완 아저씨의 에세이

<이제야 보이네>를 읽는다.

다음 달 1:1 독서 모임을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자 추천했다.


이 책에서 그가 던진 성글 그물에 건져 올려진 몇 가지 마음과 생각을 내 마음 바구니에 주워 담을 수 있길 바란다.


(어린 시절 "산할아버지" 노래를 흥얼거렸던 나만의 내적 친밀감으로 김창완 님을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부르니 이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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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담아둘 서랍 하나]

형제 세명으로 이루어졌던 "산울림" 밴드가 막내 "김창익"의 사망으로 활동이 중단된 시절을 회상한다.

49살에 사고로 죽은 동생.


김창완은 그가 죽고 나서 삼 형제가 독립된 계체 세 개가 아닌 하나였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마치 사지가 절단된 것과 같았던 그 그 통.

형제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그때가 언제이든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에릭 클랩턴이 어린 아들 코너를 먼저 보내고 만든 "Tears in Heaven(천국의 눈물)"처럼 자신에게도 슬픔에서 꺼내줄 노래가 필요해 만들었다는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막내 김창익과 김창완이 네 살 터울이기 때문에 이 노래 제목이 나온 것 같다.

이 형제들에게 열두 살, 열여섯은 어떤 날들이었을까?

김창완 아저씨는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노래를 찾아 들어본다.

덤덤하게 흐르는 멜로디와 말하듯 노래하는 아저씨.

"그날은 그날이었고 오늘은 오늘일 뿐이야. (...) 내 꿈을 따먹던 청춘시절. 이제 꿈을 접어 날려 보낸다'


아저씨는 마음이 한 칸, 단칸방이라고 자주 말하는데 이별, 고통, 상실로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그 방에 서랍하나를 장만하라고 한다.


애써 세월로 씻어서 잊으려고 하기보다는 "고이 간직"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아저씨가 아주 힘들 때 들었다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찾아 들어본다.

아저씨 표현대로 가슴을 써레질하는 오르간과 첼로의 선율.

응어리진 고통을 잘게 부스고 고르게 펴내는 치유의 써레질에 잠시 마음을 맡겨본다.

사실 나는 듣기 힘들다. 몇 분 듣다 포기했다가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듣는다.

고통은 이런 선율로 해소되는 것일까?


내 곁에는 음악도 있다


김창완 아저씨말처럼 괴로움도 아픔도 다 담아두면 훗날 정말 "향기"가 날까?

이별, 괴로움, 상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는 말을 이해할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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