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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처럼 마티스처럼 그리고 싶었던 시절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사이에서

by 윤서린

그림을 뭣도 모르면서 그리겠다고 겁 없이....????


사실 수십 년을 망설이다 마흔 중반에 시작한 그림이다.


나는 고흐를 좋아한다.

고흐처럼 그리고 싶다.

고흐의 하늘로 춤추듯 올라가는 사이프러스나무와 들판, 빛의 물결 같은 하늘을 그리고 싶다.


화실에 수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흐의 흰 장미가 든 화병을 그렸다.

두 번째로 도전한 게 아래 사진 속 노란색 배경의 "아이리스 화병"이었다.

이미 흰 장미를 그리면서 꽃잎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좌절감에 빠져있던 나에게 아이리스는 큰 도전이었다.


차분이 색을 올리고 덮고 올리고의 반복.

꽤 오랜 시간 작업해야 했지만 나는 "고흐처럼 그리고 싶으니까 멈출 수 없었다."

고흐의 아이리스 그림 2023. 캔버스에 아크릴화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린 후 나는 더 이상 고흐를 그리지 않았다.


나는 내 나름 최대의 섬세함을 끌어와 영혼(?)으로 작업했건만. 고흐의 타고난 섬세함과 감각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고흐가 되고 싶은데 내 붓을 든 손은 '너 이렇게 그리는 거 별로잖아. 즐겁지 않잖아....' 자꾸 나에게 말을 걸었다.


고흐의 그림을 거친듯해 보이지만 사실 엄청나게 섬세한 그림이라는 걸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냥 툭툭 그리면 될 것 같았는데 보기와 너무 달랐다.

나는 고흐 그림에 두 손 두 발을 들어야 했다.


아이리스 화병과의 긴 사투로 지쳐버린 나는 쉬어가는 느낌으로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아이패드로 따라 그렸다.

쓱쓱쓱...

<이카루스>를 따라 그리다가 나만의 느낌으로 별의 모빌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림을 변형해 봤다.

낮잠 자는 여인의 모습도 쓱쓱 그려봤는데 재. 미. 있. 다.

힘빼고 낙서하듯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그려본 마티스 그림들 2023.


마티스 그림을 따라 그려보며 나는 강렬한 색의 조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심플한 그림체와 자연스러운 듯 거친 붓질이 좋았다.


신나서 집에서 고양이와 연주하는 여인들 그림을 따라 그려봤다.

이때는 그림 그리는 게 너무 신나서 반나절을 꼼짝없이 앉아 그렸다.

그림 속 여인들 표정도 바꾸고 귀걸이도 그려준다.


화실 그림벗과 작가님은 내가 고흐보다는 마티스 그림풍과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해준다.

화실에서 나는 일명 "서티스"로 통한다.

그녀들이 내 성을 따서 붙여준 별명이다.


고흐가 되고 싶었던지만 그냥 "서티스~"가 된 나.

한동안 그렇게 "서티스"를 꿈꿨었다.

하지만 2024년 전시회에 출품할 자화상을 그리다가 나는 또 한 번 좌절한다.


나는 왜 내 스타일과 그림체가 없을까?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정말 다른 걸까?

나는 왜 그림을 그리려는 걸까?

왜 머릿속 그림은 현실로 표현이 안되는 걸까?


한계에 부딪힌 채 심각하게 그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2024년의 가을이었다.




집에서 마티스 그림을 따라 그려봤다. 고양이와 연주하는 여인들. 2023년. 캔버스에 아크릴화




(이 글은 2025. 5. 28에 쓰다가 이제야 마무리하여 발행합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수다스럽고 평범한 저의 일상 이야기에 자기 검열이 들어가 몇 달째 혼란스러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저 연습장처럼 브런치에 제 일상과 변화, 다양한 저의 모습들을 기록하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과 구독자분들의 기대에 맞는 글 다운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벽독서, 시, 노랫말 정도의 정제된 또 다른 제 모습만 드러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엉뚱하고 엉성하고 별거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다른 글에서 불쑥 튀어나오더라도 저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걸 구독자분들이 알아주시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네요~


부족한 글이지만 늘 관심으로 읽어주시고 답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 감사합니다.

사실 댓글도 계속 쳐다보고 여러 번 읽어보는데 답글 다는데 또 오랜 시간 버퍼링이 걸리는 소심하고 더딘 사람입니다.

시간을 쪼개서 제 글 쓰기에도 급급한 상황이라 소통을 많이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구독해 주시고 라이킷,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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