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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드로잉] 그림 3년 차인데 첫 연필 드로잉

by 윤서린

아마 횟수로 취미 미술을 시작한 게 3년 차가 되어 가는 것 같다.

평균 한 달에 세 번 정도 토요일마다 수업에 간다.


처음 오일파스텔 그림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아크릴화로 꽃을 그렸다.


1년 전쯤인가? 그 훨씬 전이었나?

기억도 가물거리는 예전에 어반스케치를 배워볼까 싶어 선긋기 수업을 한 번 했었다.

하지만 직선, 사선을 그리다 좀이 쑤셔서 수업 한 번만에 항복선언을 했었다.


2주 전에 아크릴화 그림이 뜻대로 되지 않고 다시 다 덮은 후 나는 당분간 꽃그림을 그리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그릴 수 있는 수준의 꽃그림은 이제 끝난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

하지만 늘 기초는 내 발목을 잡는다.

기본기를 쌓으려면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시간을 견딜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화실 작가님께 인물화를 그려보고 싶다고 말하고 오랜만에 다시 연필을 잡았다.

기본적인 인물화의 비율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작가님이 나의 성향을 아시기에 어렵지 않게 기본 중에 기본으로 알려주신다.

비율을 비교하기 쉽게 연습용 종이를 접었다.

예시 사진을 보고 각각의 비율과 위치를 가늠해 본다.


처음에 눈썹 위치를 잡고 눈을 그렸는데 전체적인 비율을 고려하지 않고 그려서 눈이 너무 컸다.

1시간 동안 그린 눈을 지우개로 빡빡 지운다.

작가님께 긴급 구조 요청!


작가님이 비율 잡는 법을 다시 알려주신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코와 입술의 비율이 크다.

아직 내가 사진을 보고 눈, 코, 입의 전체적인 비율을 못 보는 탓에 처음 그린 눈이 왕방울만 해진 것이다.


눈동자의 안광을 희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이미 연필자국이 너무 진해서 한쪽 눈의 안광이 밝게 표현이 되질 않는다.

계속 지우개질을 하다가는 눈동자 부분 종이가 찢어질 판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

오늘은 첫날이니까.


눈을 그리고 코와 입술의 중심선이 살짝 어긋난 게 보여서 지우고 여러 차례 다시 그렸다.

머리카락은 손이 가는 대로 쓱쓱 그리고 (사실 이게 제일 쉽고 재미있었다.)

어설프지만 3시간 만에 첫 연필 드로잉 그림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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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는 장렬하게 전사했다.

책상 위가 온통 지우개 가루...


집에 돌아와 일러스트를 제법 잘 그리는 큰 딸에게 내 첫 인물 드로잉을 보여줬더니 "어? 괜찮은데요?" 하며 긍정적으로 반응해 준다.


"딸~~. 나도 너처럼 나중에 애니 일러스트 그릴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림 선배님이 그렇게 말해주니 어깨가 살짝 으쓱해진다.

그녀는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서 그걸로 용돈을 번다.

사실 작년부터 그녀를 설득해서 카*오톡 이모티콘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으면 엄마가 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흠... 내가 할 수 있음 진작에 했지...

아이디어는 내가 내고 그림은 잘 그리는 그녀가 맡아서 하면 좋은데 아쉽다.

훗날 나도 그림을 꾸준히 그리다 보면 내가 원하는 느낌의 그림체와 나만의 캐릭터가 생기는 그런 날이 올까?


주말은 편마비인 시어머님을 내가 케어하는 날이다.

시부모님이 계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노트북, 책 몇 권을 챙긴다.

그러다 파일에 A4 빈용지 몇 장과 연필, 지우개를 챙겨 내려왔다.


혼자 드로잉 연습을 해볼까 싶은데 시부모님 저녁 식사를 챙겨드리고 이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눕고 싶어진다.

어머니 환자 침대 옆에 이불자리를 펴고 작은 책상을 펼친다.


나는 과연 연필 드로잉을 연습할 것인가? 아님 새벽 체력을 위해 깜빡 잘 것인가?

맞춤법 검사를 누르려는 이 순간에도 갈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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