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내면소통> , 릭 루빈 <창조적 행위 : 존재의 방식>
우리 뇌는 다양한 감각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할 때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편집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동시성'이라고 한다.
'동시성'이란 "오감을 통해 얻는 여러 종류의 감각정보를 통합해서 '나'는 하나의 사건 혹은 하나의 세상을 통해 고 있다고 믿는 것"(190면)을 말한다.
'동시성'에 대한 간단한 실험은 '손뼉치기'라는 하나의 사건에 관련된 세 가지 서로 다른 감각(촉각, 청각, 시각)을 처리할 때 뇌가 어떤 편집 과정을 보이는지 살펴본다.
이 세 가지 감각정보는 우리 뇌에 도달되는데 상당한 시간차가 존재한다.
"촉각정보나 청각정보는 시각정보보다 훨씬 더 빨리 뇌에 도착한다. (...) 뇌는 손의 감촉을 먼저 느끼고, 손뼉 소리를 듣고 나서, 두 손이 마주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 그러나 의식은 이런 '시간 차이'를 없애버린다. 뇌는 '수동적으로 지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편집하는 존재'다." (196~197면)
우리의 의식은 '말이 되도록' 편집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다
(197면 참고)
"우리의 의식은 결코 주어지는 감각정보를 수동적으로 반영하지 않는다. 늘 '말이 되도록' 편집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편집' 또는 '스토리텔링'의 기능 자체가 의식의 본질이다." (197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실체가 지각과 인식작용의 산물이다.
(198면 참고)
"일체유심조'는 세상만사가 그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정도의 뜻이 아니다. 훨씬 더 깊고 근본적인 의미를 담은 말이다, 물질적 대상이든 정신적 대상이든, 구체적인 사물이든, 추상적인 개념이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실체가 지각과 인식작용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198면)
도대체 이 책은 무엇일까?
우연히 책 추천 목록에서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뒀다가 제목만으로 구입한 책.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목차도 보지 않고 산 책.
왜 나한테 선택되어 새벽독서의 '읽고 싶은 책'이 됐을까?
무엇인가 끌리는 마음으로 15시간 넘게 밤을 새워서 CCM 노랫말에 어울리는 멜로디의 곡을 찾아 선택하는 작업을 했다.
겁도 없이 새벽에 <CCM 소명으로 피어나는 노랫말> 브런치북 연재를 새롭게 만들었다.
마음속으로 계속 나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내가 CCM 노랫말이 미치도록 쓰고 싶었던 건 지난 10년간 세월 신앙을 등지고 산 자의 종교적 고백인 것인가, 아니면 그저 예술적 영감인 걸까.
그런데 오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으면서 "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보게 되니 정말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왜 자꾸 우연 같은 "동시성(Synchronicity)"의 순간이 나타나는 것일까?
창조의 도구가 무엇이든 진정한 도구는 나 자신이다.
나를 둘러싼 광활한 우주의 초점이 나를 통해 맞춰진다.
(34면)
창조 행위는 신비한 영역에 들어가려는 시도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 가는 포털이다
(35면 참고)
영적인 에너지의 활용은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증거는 필요하지 않다.
(36면 참고)
"영성의 실천이란 나 혼자만 덩그러니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표면 뒤에 더 심오한 의미가 있다. 우리 주변의 에너지는 우리의 작품을 고양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 우리는 설명을 초월하는 훨씬 거대한 무언가, 즉 무한 한 가능성으로 가득한 세계의 일부이다." (36면)
이 문장을 만난 것은 나에게 더 이상 너무 고민하지 말라는 뜻일까?
그냥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을 믿으라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영성의 실천을 하게된 걸까?
아님 오랜 전부터 마음 안에 자리 잡은 감정이 오늘에서야 발현된 것일까?
이것은 그저 우연 같은 동시성의 순간일까?
내일 읽을 부분을 일부러 넘겨보지 않았다.
과연 내일은 또 어떤 문장이 나를 놀랠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