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나로 존재하는 법>, 릭 루빈 <창조적 행위 >
나는 헤르만 헤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고 결코 그를 다 알지 못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부만으로도 나는 그를 사랑(존경, 동경이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 마음이 느껴져 아팠다가도 그가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음에 또 감탄하고 그렇게 다시 사랑에 빠진다.
"나는 목성의 부드러운 빛을 받으며 게자리에서 태어났다. 7월의 따뜻한 날, 초저녁이었다. 그 시간의 그 기온이란! 살아가면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내 이런 기온을 좋아했고, 이런 기온을 찾아다녔다". (41면)
헤르만 헤세가 자신의 탄생을 우주와 연결 짓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정말 그는 목성의 부드러운 빛으로 감싸여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도 여행에서도 자신이 태어났던 그때의 그 기온을 좋아해 그 따뜻함을 찾아다닐 만큼 좋아한다니...
그렇다면 나는 어떤 기온을 좋아할까 생각해 본다.
바닥은 따뜻하고 공기는 살짝 서늘해서 머리가 맑아지는 기온.
그러고 보니 내가 태어난 초겨울과 어울리는 기온을 내 몸이 좋아했던 거구나.
헤르만 헤세 덕분에 나는 그 기온 속에 있을 때 나라는 존재의 탄생을 미소 지으며 떠올리게 될 것 같다.
평생을 그 시간은 외롭고 쓸쓸한 시간이었다고 느끼며 살았는데.
오늘 이 문장을 만나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문인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되고자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열세 살 때부터 내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나는 문인이 되든가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 문인이 되고자 한다는 건 우스운 것이고, 창피한 것이라는 걸 나는 곧 알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빠르게 알아차렸다. 문인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되고자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45면)
헤세의 어린 시절은 학교에서 받은 억울한 누명과 고문, 매질, 수도원 학교에서 도망치다 감금되고 퇴학당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 가게의 수습 점원이었지만 도망쳐 나오기도 하고 아버지의 조수도 했다가 기계를 다루는 작업장과 탑시계 공장의 수습생으로도 일한다.
가족과 사회에서 "쓸만한 인간"으로 살아보려 했던 그는 그가 가진 예민함, 섬세함, 깨어있는 감각을 인정받기는커녕 억눌러야 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재능이 많다고 인정받고 의지가 강했음에도. 또한 늘 부지런했음에도 말이다.
헤세가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된 열다섯 살 무렵, 그는 할어버지가 큰 방 가득 남긴 옛날 책들을 읽으며 의식적이고 열정적으로 독학에 뛰어든다.
16세~20세에 그는 엄청난 양의 습작을 했고 세계문학의 절반가량을 읽었고, 예술사, 언어, 철학을 끈기 있게 공부해 나간다.
서점 직원으로 밥벌이를 해야 했던 헤세는 잠시 최신 문학에 푹 빠지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새로운 것과 최신의 것만으로 살아가는 삶은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이 무의미하다
"새로운 것과 최신의 것만으로 살아가는 삶은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과거의 유산과 지나간 것, 오래된 것, 아주 오래된 것과 계속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 (48면)
헤세는 문학으로 스물여섯에 첫 성공을 거둔 후 가정을 이루고 한동안 조용하고 순탄하게 보내는 듯했다.
하지만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헤세는 자신과 이 시대가 다시 불안정 삶의 토대 위에 있음을 깨닫고 힘들어한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달랐다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다른 많은 이들이 공유했던 그 커다란 위안이 내겐 없었다는 점이다. 바로 그 시대에 열광하는 것 말이다. 그로써 나는 다시금 나 자신에게로, 세계와 불화하는 삶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금 학교에 들어간 형국이 되었고, 나 자신에 대한, 세계에 대한 만족감을 다시금 잃어버렸다. 이런 경험과 더불어 비로소 삶으로 들어가는 문지방을 넘었다." (50면)
헤르만 헤세가 학교와 권위적이고 모순적인 어른들, 전쟁에 휩쓸린 세계와 불화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그의 여린 마음에 얼마나 큰 상흔을 남겼을까. 하지만 그는 이를 통해 비로소 삶으로 들어가는 문지방을 넘었다고 말하며 삶의 의지와 사랑을 말한다.
릭 루빈은 예술가가 자기 의심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창조 과정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 만드는 작품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나를 영원히 정의할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가지라고 말한다.
"이것은 작은 작품이고 출발점일 뿐이다" (완벽이 아니라 완성을 하라고 말한다)
"이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다음 프로젝트로 옮겨가는 것이 목표다"
" 지금은 그다음 작품으로 가는 디딤돌이다.". (68면 참고)
모든 예술은 진행 중인 작품이다
요점을 정리해 본다.
자유로운 놀이,
완벽이 아닌 완성하는 것
즐겁게 몰입하는 것,
놀이를 위한 놀이,
자유롭게 놀고 탐구하고 실험하는 것,
행복한 놀라움에 이르는 것.
릭 루빈은 불안한 감정이 커질 때, 그 감정에 이름표를 붙여주었다고 한다.
"파판차"
(불교에서 사념의 확산, 희론을 일컫는 말이다)
"예전에 자기 의심으로 얼어붙어서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아티스트와 일한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혹시 회론, 또는 사념의 확산이라고 번역되는 불교의 파판차(Papancha)라는 개념을 아는지 물어보았다.(...)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것에 이름이 생기자, 그는 의심을 그리 심각하지 않은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의심이 떠오르면 그저 파판차구나 생각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 (70면)
결점이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심점이 된다
릭루빈은 일본에서 도자기를 수선하는 '긴츠기'라는 기법(금가루로 깨진 도자기 틈을 메워는 기법)을 예로 들어 예술가의 불안전한 부분, 실수, 결점을 인정하고 오히려 부각해도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들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만을 추구하다가는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할지 모른다.
조금은 부족해도 "완성"해 "공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창조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랫말을 만드는 모든 순간들, 그저 즐겁고 자유로운 놀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 인정하고 칭찬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위대하다.
지금 여기 모인 우리들은 글과 사유를 소비하고 공유하는 구독자인 동시에 자신의 글과 사유로 자유롭게 창조하는 삶을 사는 각각의 예술가들이기 때문이다.
* 시어머님 케어하면서 잠자리가 바뀌었더니 정신이 없어서 새벽독서 인증하는 시간 사진을 못 찍고 넘어간걸 뒤늦게 깨달았다. 다행히 오늘 발행한 노래 <나는 나의 정원> 최종 멜로디 작업한 시간이 남아있어 올려본다.
시간 인증 사진이 없다고 뭐라 하실 독자분들은 없겠지만(아마도) "새벽독서" 루틴은 나 스스로의 약속이니까 열심히 기록해 본다.